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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iavelli's peace25

역사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시골집에 틀어박혀 (피렌체사)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 자신과 그가 갈망하던 생활 사이에 또다시 옛날의 그 숲과 올리브 동산과 사람들과의 절연이 들어서 있다. 날이 밝으면 이전에 베토리에게 적어 보낸 대로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런 생활이 시작된다. 끈끈이로 잡을 개똥지빠귀는 없지만, 그물로 잡을 만한 꾀꼬리는 있다. 또한 숲이 있고 술집이 있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나른한 분위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자신이 모데나에서 귀차르디니와 나누었던 그 유쾌했던 이야기들과, 총독 친구의 그늘에서 며칠 간이나마 맛볼 수 있었던 공사의 기분 좋은 향내를 다시 기억해 낸다. 그러다가 저녁이 오면, 그의 고독은 다시 위대한 영혼들로 둘러싸이고, 그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이번에 만나는 사람들.. 2020. 8. 20.
(나막신 공화국) 사절 시기 1521년 5월의 어느 날, 마키아벨리는 아펜니노 산맥의 정상을 뒤로한 채 볼로냐 쪽으로 말을 몰아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안장 주머니속에는 공화국 시절의 10인위원회를 대체한 8인집행위원회 gli Otto di Pratica의 명령서가 들어 있었다. 그 문서는 그가 오랫동안 근무하던 바로 그 부서에서 씌어졌고, 그것에 서명한 사람 역시 그를 대신하여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니콜로 미켈로치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다시 한번 정부 신임장을 들고 공화국의 경계 너머 토스카나를 벗어나 사절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의 조국이 그 날카로운 관찰자이자 예견력 있는 정치가인 그를 다시 기억해 냈단 말인가? 그리하여 그는 지금 또 다시 프랑스 왕과 황제에게로 가고 있는 것인가? 오 .. 2020. 8. 20.
(카스트루초 전)과 (전술론) 보잘것없는 돈에도 불구하고 역사 쓰기를 택하다 로렌초 데 메디치의 죽음은 그의 아버지인 피에로가 죽었을 때와 꼭 마찬가지로, 피렌체에서 메디치 정권의 입장을 오히려 호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르시니 가와의 새로운 혈연 관계, 새로운 혈연 관계, 새로운 공작령의 획득, 프랑스 앙가와의 새 결속 관계, 어머니로부터 받은 나쁜 영향, 조신들의 잘못된 조언. 이 모든 것이 위대했던 대 로렌초의 적출로서는 마지막이었던 인물에게서 피렌체적 (문화 civilta)(이말은 넓게는 문명, 문화, 좁게느 푸뮈, 세련미 등을 가리키며, 르네상스 이탈리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어이다. 마키아벨 리가 군주론 26장에서 알프스 이북의 사람들을 야만적 barbaro이라 불렀을 때, 그가 그 반대 개념으로서 염두에 두고.. 2020. 8. 20.
(무료함) 속의 글쓰기 당나귀, 만드라골라, 벨파고르 정치에서 물러나 지난 몇 년 동안의 고통과 최근 몇 달 간의 각성을 경험하고, 교황의 원한과 우르비노 공의 어리석은 무관심으로 인생 행로에 거의 결정적인 낙인이 찍히자, 마키아벨리는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심기를 다독거리고 스스로의 재능을 분출해 내고자 하였다. 그의 글들과 마찬가지로 무료한 삶 역시, 반드시 그가 처한 역경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문학이라 부르는 그러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의 내밀한 불안감이 그의 한숨만큼이나 그가 짓는 냉소를 통해 측정될 수 있음을 이미 터득한 바 있다. 그는 이제 갑자기 그 냉소와 한숨으로 글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글은 다름아닌 (당나귀 L'Asino) 이다. 이 작품이 보통 (황금 당.. 2020. 8. 20.
사랑과 고통 그러나 마키아벨리에게 피렌체는 이미 옛날의 그곳이 아니었고, 도시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시골에서 빈둥거리기보다 더 나은 바도 없어 보였다. 물론 그는 괘활한 성격에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산탄드레아의 술집 주인이나 푸주한, 그리고 가마 굽는 친구들보다야 더 세련된 얼굴들을 보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생활이 분명 싫지는 않았으리라. 피렌체인 특유의 재치와 독설과 예민성이 난무하는 주점에서 그는 언제나 최고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그런 유의 사람이었고, 이 역시 자신의 재능을 때로는 시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다잡기도 하는 한 가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서는 아무 하는 일 없이 이러한 종류의 놀음만으로 지내는 것은 결코 성에 차지 않았다. 저녁이 오면, 그는 쓰잘데없는 말의 유희가 남긴 덧없는 수.. 2020. 8. 20.
산탄드레아의 (여가) 리비우스 논고와 군주론 페르쿠시나 지방의 산탄드레아는 dpt 로마의 우편도로 부근에 자리잡은 조그만 마을로, 피렌체에서는 7밀리오, 산 카쉬아노에서는 2밀리오 떨어져 있다. 작은 교구 성당, 여인숙으로 사용되는 집 한 채, 이와 담을 같이 하고 있으면서 속칭 영주관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오막살이에 가까운 건물, 뒤쪽으로는 옹기종기 농가들이 박혀 있고 길 건너 편으로는 기름 짜는 곳, 빵 굽는 곳, 빵 굽는 곳, 농번기에 쓰는 움막, 외양간 등으로 쓰이는 집들을 거느린 군데군데 허물어진 성벽과 망류들, 농장 일꾼들이 기거하는 오두막집 등이 흩어져 있다. 이 집들, 이 농가들, 그리고 (보르고) 또는 (스트라다)로 불리는 이 농장과 (포초)라 불리는 또 다른 농장, 몬테풀리아노와 폰탈레의 땅들, 이러한 것들이.. 2020. 8.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