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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지 습관

패러다임과 원칙들

by FraisGout 2020. 7. 27.

    내면으로부터 시작하라
  이 세상에서 진정한 우수함이란 올바른 삶과 분리될 수 없다. - 데이비드 스타 조단
(미국 뉴욕 출생. 생물학자, 교육자.) -
  나는 지난 25년 이상을 기업체, 대학, 그리고 결혼  및 가족 관계에서 수많은 사람들
을 도와 주는 컨설팅 분야의 일을 해 왔다. 그 과정에서 외적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성
공을 거두었지만, 내적으로는 개인적인 일체감과 효율성 그리고 타인과의 건전하고  발
전적인 관계를 갖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 왔다.
  그들이 내게 말해 준 다음과 같은 문제 중 일부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내용일 것이다.
  나는 현 직장에서 커리어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드디어 달성하였다. 나아가 지금 종
사하고 있는 전문 분야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나는 그 대가로 개인적인 삶
과 가정생활을 희생시켰다. 나는 더 이상 아내와 자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나는 
이제 나 자신에 대해, 또 내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게 
되었다. 이제서야 나는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겠다.  도대체 직장에서의 출세가 그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나는 금년 들어 새로운 방법의 식이요법을 다섯 번째로 시작하였다. 나는 체중이 너
무 무거워 정말이지 살을 빼고 싶다. 그래서 체중을 줄이는 것과 관계되는 새로운 정보
를 모두 입수하고, 목표를 정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지니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나는 할 
수 있다.'고 거듭 다짐한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몇 주만 지나면 또 실패하고 
만다. 이제 나는 내 자신에게 스스로 한 약속조차도 지킬 수 없다.
  나는 효율적인 관리를 위한 훈련 과정에 여러 번 참가하였다.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 또 그들을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애사심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만약 내가 아파서 하루라도  집에서 
쉬고 출근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들은 대부분의 근무시간을 잡담이나 수다를  떨면서 
보낼 것이다. 왜 나는 우리  직원들을 보다 자립적이고, 책임감  있게 훈련시키지 못할
까?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직원들을 왜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십대인 우리 아들은 반항적이고 약물중독자이다.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내 말을 통 들
으려고 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할 일은 너무나 많은데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 나는 하루 종일, 매일매일, 그리고  일
주일 내내 압박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그 동안 시간관리 세미나에도 참석해  보았
고, 대여섯 가지나 되는 시간관리  시스템도 이용해 보았다. 물론  이것이 약간 도움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내 생활은 행복하고, 생산적이고, 평화스럽지 못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노동의 가치를 가르쳐 주고 싶다. 그러나 이들에게 뭘 좀 시키
려면 일거수 일투족을 감독해야 하고, 또 잔소리를 늘어 놓아야한다. 차라리 내가 일을 
해 버리는 것이 더 쉽다. 왜 아이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할까?
  나는 정말이지 바쁘다. 그러나 때때로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장기적으로 보아 도대체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의구심이 일곤 한다. 나는 진정으로 내 인생이 의미있기를 바라
고, 또 내가 하는 일은 뭔가 다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친구나 친척들이 성공을 하고 인정을 받는 것을 보면 기뻐하고 축하도 해 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질투 비슷한 착잡한 심경을 누를 길이 없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느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대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대
인관계에서 최종결과를 조절한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해결방안
으로 따라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 내가 제안하는 아이디어야말로 모든  사람들
에게 최선의 방안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편치 못하다.  나는 그들이 내 자
신과 나의 아이디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늘 궁금하다.
  우리의 결혼생활은 이제 권태기에 들어섰다. 이제 더 이상 다투지도 않는다. 또 우리
는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우리 부부는 함께 상담을  받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른 
시도도 해봤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상과 같은 내용들은 심각한 문제이며, 또 고통스러운  문제이다. 그러나 이같은 문
제는 단번에 효과를 보는 응급처치식 방법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몇 년 전 나는 아내 샌드라(Sandra)와 이런 류의 문제를 놓고 노심초사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우리 아들 중 하나는 학교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학교성적이 신
통치 못했다. 시험을 볼 때는 문항의 지시조차도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험성적
이 신통할 리 없었다.
  게다가 그는 사회적으로도 미숙하였기 때문에 가족들을 종종 창피하게 하였다.  키가 
작고, 깡말랐는데다, 운동신경도 발달하지 못해 야구를 할  때는 볼이 날아오기도 전에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댈 정도로 미숙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애를 비웃곤 했다. 아
내와 나는 그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노심초사하였다. 만약 '성공'이 인생의 모든 분야에
서 중요한 것이라면,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역할이야말로 아들에게 가장 중요
하다고 느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통해 그를 도와주려고  노력하였
다.
  우리는 적극적 사고기법을 활용하여 그로  하여금 용기를 내도록 하였다. "자,  얘야! 
너는 할 수 있다! 너는  해 낼 능력이 있다. 손을  조금 위로 올려 야구방망이를 잡고, 
볼을 똑바로 지켜 보아라. 볼이 가까이 오기 전에 스윙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계속해서 격려해  주었다. "아이고, 장하다. 계속 그대로  밀고 
나가라."
  그가 야구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웃을 때마다 우리는 그들을 나무랐다.
  "우리 애 일에 관심 갖지  마세요. 간섭하지 말라고요. 그는 이제  막 배우는 참이에
요." 그러면 우리 아들은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기는 결코 더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  하
면서 야구하기 싫다고 떼를 썼다.
  어떠한 우리의 노력도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그의 자존심을 손상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를 
격려해 주고, 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였으나, 몇 번이고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
나 마침내는 다른 차원에서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였다.
  이즈음 나는 전국에 걸친 여러 회사들을 대상으로 한 리더십 프로그램에 컨설턴트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IBM 고급 경영자 연수과정이었다. 이것은 임원들을 대
상으로 격월로 실시되었으며, 커뮤니케이션과 지각에 관한 주제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
램이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다룰 내용을 연구하고 조사하면서 지각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
다. 즉, 지각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사물을 볼 때 지각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나아가 
우리가 보는 방식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나에게 동기유발에  있어서 기대이론, 자성예언,  즉 '피그말리온(본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자기가 만든 상아상 갈라티아를 연모한 키프로스의 왕의 
이름이다. 여기서는 버나드의 코미디를 말하는데, 취급받음에  따라 달라지는 심리현상
을 말한다)현상'을 공부하게 만들었고, 나아가 우리의 지각이 미치는 깊은 영향을 깨닫
도록 해 주었다. 즉, 우리에게 보이는 세상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어떤 렌즈를 통
하여 보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렌즈 자체가 세상에 대한 우
리의 해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내가 IBM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또 우리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이야
기를 나눌 때, 우리가 아들을 돕기 위해 하는 일들이 우리가 그를 렌즈 없이 그대로 보
았을 때의 대응책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들이 가진 내면의 심리를 솔직하게 살
펴볼 때, 우리는 그가 적응을 못하고 있으며, 어쨌든 '남들보다 뒤쳐져  있다.'고 생각하
고 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우리가 이러한 태도와 행동을 가지고 있는 한 아무리 노력해 봤자 별 효과를 
얻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실제로 전하고
자 하는 내용은 "너는 능력이 없다. 너는  반드시 보호를 받아야 한다."라는 뜻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상황을 변화시키기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해야 한다는 사
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아가 우리 자신을 효과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그
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을 바꾸어야 했다. 
  <성격(개성, Personality) 윤리와 성품(인성, Character) 윤리)
  나는 지각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1776년 이래 미국에서  성공과 관련하여 출간된 책
과 문헌에 대해 심층조사를 해 보았다. 나는 자기개선, 대중심리학, 그리고 자기훈련 등
과 같은 분야의 책, 논문, 그리고 수필 등을 실제로 수백 권 읽고 또 살펴보았다.  나는 
이 조사를 통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람들이 성공적인 삶의  열쇠라고 여기는 것의 요
점을 확연히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난 200년간에 걸친 성공에 관한 저작물들을 연구 및  조사하는 동안 이들 문
헌의 내용에서 깜짝 놀랄 만한 유형을 파악하였다. 또한 나는 우리 가정이 당했던 고통 
그리고 지난 수년 동안 내게 도움을 청해 왔던 많은 사람들도 그들의 삶과 대인관계에
서 비슷한 고통을 당하고 있음을 파악하면서 최근 50년간의 성공문헌들 대부분이 피상
적 해결책만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문헌들은 주로 사회적 이미지에 대한 의식, 다양한 기법들, 그리고 응급
처치식 대응책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즉, 급성적인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아스피
린이나 주고 붕대나 감아주는 식의 임시응급책을 씀으로써  경우에 따라서는 일시적인 
해결책이 되기도 하였다. 더욱이 급하지는 않지만 원천적인 문제의 해결을  방치함으로
써 자주 곪아 터지고 재발하게 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 건국후 최초 150년간에 나온  거의 대부분의 문헌들은 성품 
윤리(Character Ethics)라고 부르는 인성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여기에는 에컨대 
언행일치, 겸손, 충성, 절제, 용기, 정의, 인내,  근면, 소박, 수수함, 그리고 황금률 등이 
있다. 대표적인 문헌으로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들 수 있다. 그의 자서전은 근본
적으로 자신의 본성에 깊이 감추어진 내면적 원칙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습관을 통합시
키려고 노력하는 한 인간을 다루고 있다.
  성품 윤리에 따르면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기본원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따라
서 우리가 이 원칙을 배우고 또 이것을 자신의 기본적인 성품에다 통합시킨다면, 진정
한 성공과 행복한 삶을 성취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성공을 보는 기본적 시각은 성품윤리에서부터 소위 
성격 윤리({Personality Ethics)로 바꾸어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는 대인관계를 원활
하게 해주는 성격, 대중적 이미지, 태도와 행동, 나아가 기법과 기술이야말로 성공에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이같은 성격 윤리는 근본적으로 2가지 분야로 나누어 진다. 즉, 하나는 개인 및 대중
을 상대할 때 필요한 각종 기법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 사고방식이다. 이 서역 중심 
사상의 일면은 다음과 같은 금언으로 표현되는데, 이것들은 사람을 분발케 해서 대단히 
효과적인 경우도 있다. "당신이 가진 태도가 당신이 높은 지위에 도달하는 여부를 결정
한다." , "찌푸리는 것보다 미소를 짓는 것이 더 많은 친구를 얻는다." 혹은 "우리가 마
음 속에 품고 믿는 것은 무엇이든지 달성할 수 있다."
  성격 중심의 접근법이 갖는 다른 측면은 분명히 조작적이며 심지어는 기만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만들기 위해 술수를 쓰게  되
고, 또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다른 사람의 취미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위장을 하기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마치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듯이 보이도록' 하거나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위협적인 수단을 쓰기도 한다.
  이같은 문헌 중 어떤 것은 성품을 성공의 요소로 보고 있으나, 성품을 근본적이고 촉
매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일반 특성  중의 하나로만 간주하고 있다. 그 결과  성품 
윤리에 관한 것은 언급뿐이었고, 실제로  강조된 것은 당장 효과를 내주는  임시변통의 
영향력 행사 기법, 권력획득 전략,  커뮤니케이션 기술 그리고 적극적  태도 같은 성격 
윤리의 요소였다. 
  나는 바로 이같은 성격 윤리가 아내와 내가 우리  아들에게 활용하려고 시도했던 해
결방안의 잠재의식적 원천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성격 윤리와 성품  윤리의 
차이를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와 아내는 그동안 아이들의 모범 행동으로 사회적인 만
족감을 얻어 왔는데, 이 아이만은 그렇지가 못해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
리가 가진 우리 자신에 대한 이미지, 즉 자식을 잘 돌보는 훌륭한 부모라는 역할에 대
한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우리 아들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은 
부모로서의 역할에 더 중점을 두었던 것이다. 즉, 아이에 관한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
고 대처하는 데 많은 잘못이  있었기에 아이의 장래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내와 나는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의 성품과 동기 그리고 아들에 대한 인
식이 바로 우리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괴로운 심정으로 인정하게 되
었다. 또 사회적 비교를 하는 동기  자체가 우리 부부가 가진 중요한 가치관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이 아들에 대한 사랑이 조건적이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 
애가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앞으로의 노력을 
우리 자신에게 맞추기로 결심하였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테크닉이 아닌, 우리 부부가 가진 가장 깊은 동기와 나아가 아들
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초점을 맞추기로 작정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변화시키
려고 하는 대신에 그로부터 멀리 떨어지려고 시도하였다. 아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
시키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자신의 아이덴티티, 개성, 독립성, 그리
고 가치를 느껴보려 한 것이다. 
  우리는 깊은 사고, 믿음, 그리고  기도를 함으로써 아들이 갖고  있는 독특성을 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 애 자신의 페이스와 속도에 의해 실현될 수 있는 내재적 잠재능
력도 보게 되었다. 우리는 마음을 느긋이 먹고 그를 방해하지 않기로 작정했으며, 그가 
가진 잠재력이 스스로 우러나오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 결과 그를 확신해 주고, 기뻐해 주며, 해낸 일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등 우리 본
연의 역할만 하였다. 이와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들어 있는 각종 동기를 솔직
하게 분석해 보고, 우리 부부의 사회적 가치 기준이 애들의 성취나 행동에 무관하도록 
강한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우리가 이 아들에 대한 과거의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  가치관에 근거한 동기를 갖
게 되자, 새로운 온갖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하였다. 즉,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
교하고 판단하는 대신 그 자체를 좋아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때
부터 그를 사회적 기준의 잣대로 측정하거나, 또 우리 자신의 생각대로 키우려는 것을 
그만 두었다.
  또 그를 사회적 틀에 받아들여지는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우리가 친절하고 
적극적으로 해온 조종도 중단하였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를 비웃어도 더 
이상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이같은 보호를 받으면서 자라왔기 때문에 이것을 일단 중지하자 
처음에는 움츠러 들었으며, 고통을 느꼈고, 또 우리에게 불평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이같은 아들의 말을 수긍하면서도 부득이 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응하지  않았다. "우
리가 너를 보호해 줄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너는 근본적으로 정상적인 아이니까."라는 
것이 그에게 주는 묵시의 메시지였다.
  날이 가고 달이 지나면서 아들은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자신감과  확신감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즉, 그는 자기만이 가진 페이스와  속도로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공
부, 사교, 운동과 같은 부문의 사회적 척도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또, 자연적인 발달과정에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 나갔다. 몇 년 이내에 그는 
여러 학생단체에서 리더로 선출되었고, 주를 대표하는 운동선수가 되었으며, 모두 A학
점으로 된 성적표를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편안하
게 해 주고, 또 건전한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진솔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
다.
  그후 나와 아내는 우리 아들이 이룩한 '사회적 척도로 보아도 대단한' 성취야말로 단
지 사회적 보상이나 인정을 목표로 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가 스스로 자신감을 갖게 되
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것은 아내와 나에게 대단히 유익하고 좋은 
체험이었다. 이것은 그후 우리가 다른 아이를 다룰 때나 다른 역할을 할 때도 유념하게 
된 매우 귀중한 교훈을 남겨 주었다. 나아가 성격 윤리와 성품 윤리가 보여 주는 성공
에 대한 현격한 차이를 개인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성서의 잠언(잠언4장23절)은 이같은 우리의 확신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네 자신의 
마음속을 최선을 다해 찾아보라.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바로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일차적 및 이차적 강점>
  아들을 통한 경험, 지각에 대한 연구, 그리고 성공을  다룬 문헌에 대한 독서가 상호
결합하여 나는 인생의 어떤 순간 모든 것의 실마리가 풀릴 때 "아하."하고 감탄하는 것
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되었다. 갑자기 성격윤리가 미치는  강한 영향력을 알 수 있었고,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 - 즉, 어렸을 때 배운 것들과 내 마음속 깊이 간
직하고 있는 가치관 - 과 날마다 내 주변에서 임시변통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들이 서
로 다른 이유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것은 난해하고, 파악해 보려했어
도 막연한 것이었다.
  나아가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여러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육 훈련
과 컨설팅을 해오면서, 내가 가르치는 내용과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로 널
리 통용되고 있는 것들과 종종 차이가 났던 이유를 좀더 깊은 수준에서 이해하게 되었
다.
  나는 성격 윤리의 요소 - 성격 개발, 커뮤니케이션 기술 훈련, 설득력 향상 훈련, 그
리고 적극적 사고 분야에서의 교육-들이 유익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어떤 경우에는 이같은 요소들이야말로 성공의 관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차적인 것이지 일차적인 특성은 아니다. 우리보다  앞선 
세대가 남겨 놓은 기초 위에 무엇인가를 쌓기 위해 우리가 가진 능력을 활용하고자 할 
때, 우리는 무심코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어 이를 지탱해 주고  있는 
바탕을 잊어버린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직접 씨를 뿌리지 않은 곳에서 오랫동안 
수확을 하다 보니 씨 뿌릴 필요 자체를 잊어버리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품이 결점투성이고, 이중적이고, 불성실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원하
는 대로 행동하게 하고, 이전보다 좀더 열심히 일하게 하고, 더 큰 동기를 가지게 하며, 
나를 좋아하게 하고, 나아가 서로가 좋은 관계를 갖도록 하기 위해 영향력을 미치는 각
종 기법을 사용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보아 실패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나의 이중
성은 불신을 낳게 되고, 또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나 - 심지어는 소위 좋은 대인관계
기법을 활용하는 것조차도 - 상대방은 조작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
륭했다 해도 그 결과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다. 따라서 만일 신뢰와 믿음이 없다면 
영구적인 성공의 바탕은 없는 셈이다. 다시 말하면 기본적인 착함과 신뢰가 있을 때 이
같은 기법도 쓸모있게 된다. 
  기법에만 치중한다는 것은 마치 학교에서 시험을 위하여  당일치기로 공부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해도 임시 변통이 되고, 또 때때로 괜찮은 성적을 얻기도 하겠지만,  매일 
착실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배우고 있는  주제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또 지식에  기초한 
지성을 개발해 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봄에 씨 뿌리는 것을 잊고,  여름 내내 놀다가 가을이 되어 당일치기  농사로 
거두려고 하는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농사란 자연의 
법칙에 따른다. 따라서 반드시 노력이 들어가야  하고, 또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씨를 뿌려야 거둘 수 있다. 지름길이란 절대로 없는 법이다.
  결국 이러한 원칙은 인간 행동과  대인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인간 관계  역시 
수확의 법칙에 근거한 자연 체계이다. 학교와 같은 인위적으로 만든 사회제도에서는 인
간이 만든 규칙을 그대로 다르지  않고 '게임을 수단껏 하는'  편법을 사용한다면 잠시 
동안은 어떻게 꾸려 나갈 수도 있다.
  또 대부분의 일회적 내지 단기적인 대인관계에서는 매력이나 기법을 통해 호감을 갖
게 하거나, 나아가 다른 사람의 취미에  관심이 있는 척 하면서 좋은 인상을  형성하는 
데 있어 성격 윤리를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단기적인 상황에서는  잘 
먹히고 효과가 빠른 쉬운 기법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차적 특성만 가지고는 결코 장기적인 관계에서 영구적인 가치를 가
지지 못한다. 우리가 깊은 성실성과 성품이 갖는 근본적인 강점을 가지지 못한다면, 경
쟁적인 삶의 과정에서 결국 모든 진실이 밝혀지게 될 것이고, 대인관계 역시 단기적으
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실패로 끝날 거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하여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2차적 강점을 가진 많은 사람들
이 흔히 일차적인 강점, 즉 훌륭한 성품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
을 이들이 하는 모든 장기적인 대인관계, 즉  회사동료, 부부, 친구, 그리고 아이덴티티
의 위기를 맞고 있는 10대의 자녀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통하여 알 수 있다.
  가장 설득력 있게 의사전달을 하는 것이 바로 성품이다. 에머슨은 이것을 다음과 같
이 표현했다.
  "당신의 인격과 성품이 아주 큰 소리로 당신에 관해  설명해 주기 때문에 말로 하는 
소개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성품상으로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원활한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후자가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이차적일 따름이다.
  결국 인품이 우리가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우리 자신을 소
개해 준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예컨대 그 사람의  성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이같은 경우 그 사람이 달변이든 
아니든, 대인관게 기술이 훌륭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그 사람을 믿고 함께 성공적으
로 일한다.
  윌리엄 조지 조단(아일랜드 출생 문학작가)의 말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우리 모두는 선과 악을 행하는 놀라운 힘, 즉 성품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소리없
이, 무의식적으로, 안 보이게 삶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가식적으
로 꾸며 낼 수 없다. 이는 자기의 진정한 모습의 일관된 반영일 따름이다."
  <패러다임의 위력>
  이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인생을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살기 위하여 
필요한 수많은 기본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습관은 기본적이고, 일차적인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지속적인 행복과  성공의 근거가 되는 올바른 원칙의  내면화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들 일곱 가시 습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의  '패러다임'과 '
패러다임 전환'방법에 대해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성품 윤리와 성격 윤리는 둘 다 사회적 패러다임의 실례이다. 패러다임이란 말은 처
음에 그리스어로부터 유래한 단어이다. 또 패러다임이란  원래는 과학용어였으나, 오늘
날에 와서는 모델, 관념, 지각, 시각, 준거틀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통 사용되고 있다. 
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패러다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말한다.  다
시 말하면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시각적인 감각에서가 아니라, 지각하고, 이해하고, 해석
하는 관점에서 이 세상을 '보는' 것을 말한다.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간단한 방법은 이것을 일종의 지도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지도는 지역(땅)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도란 단순히 영토에 관한 
자세한 사항들을 설명해 줄 뿐이다. 이것이 바로 패러다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좋은 예
이다. 패러다임이란 어떤 것 자체가 아니고, 그것에 관한 의견이나 해석이며, 그것의 모
양을 나타내는 모델에 해당한다.
  이제 당신이 시카고 중심부의 어떤 지역에 가고자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시내지도
는 당신이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당신이 잘못된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인쇄상의 실수로  "시카고"라고 이름이 붙여진 이  지도는 사실은 
디트로이트의 지도였다. 엉뚱한 지도를 가지고 헤맬 때의 좌절감과 목적지를 찾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비효과적일 것인가를 한번 상상해 보라!
  당신이 이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자신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이 더 열심히, 더 부지런히, 또 두 배  정도의 속도로 노력한다고 하자. 그러
나 이같은 노력은 당신을 단지 엉뚱한 장소로만 더 빨리 데려갈 뿐이다.
  이번에는 태도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당신은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
다. 그래도 당신이 원하는 곳에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
신의 태도가 대단히 긍정적이어서 어디로 가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 아직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는 
행동이나 태도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잘못된 지도가 문제인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올바른 시카고 지도를 가지고 있다면, 그때는 부지런함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또한 가는 도중에 방해하는 장애물을 만난다면, 그때는 당신이 갖는 태도
가 중요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의 정확성이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머리 속에 수도 없이 많은 사고의 지도를 가지고 있다. 이같은 
지도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큰 범주로 구분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사물을 사실 그
대로 나타내 주는 실체의 지도이고, 다른 하나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나타내 주는 가
치관의 지도이다. 우리는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을 이같은 두 가지 사고의 지도를 통
해 해석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고의 지도가 갖는 정확성에 대해 좀처럼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
어 우리 자신이 이같은 두 개의 지도를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보통은 의식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물을 이해하는 데 실제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본다고 가정하거
나, 또는 사물의 진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태도와 행동은 바로 이같은 가정으로부터 생성된다. 또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사고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나오는 원천이다. 
  이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전에, 지적이고 감동적인 체험을 한번 해보자. 다음 페이지
에 제시된 그림을 몇 초 동안만 관찰하라.(한 여인의 그림) 
  그 다음에는 34페이지에 제시된 그림을 보고, 당신이 본 것을 조심스레 기술해 보라. 
  한 여자를 보았는가? 그녀의 나이가 얼마나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그녀가 어떻게 보
이는가?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가? 그녀는 어떤 일을 하는 여자같이 보이는가?
  당신은 아마도 둘째 번 그림의 여자가 대략 25살 정도이고, 오똑한 콧날과 얌전한 모
습을 지닌 매우 사랑스럽고 현대적인 여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독신자라면 
그녀와 함께 데이트를 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또 만약 당신이 의류회사를 한다면 그녀
를 패션모델로 채용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내가 당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 그림의 여
자는 슬픈 표정을 하고  있고, 나이는 60~70대이며, 매부리코를  가졌기 때문에 모델로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녀는 길을 건널 때 옆에서 부
축을 해주어야 할 노파이다.
  누구의 판단이 옳은가? 이제 그림을 다시  한번 살펴보라. 당신은 노파의 모습을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좀더 노력해 보라. 그녀의 커다란 매부리코가 보이는가? 그
녀가 걸치고 있는 숄이 보이는가?
  만약 당신과 내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이 그림에 대해 좀더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본 것을 내게 설명해 줄 수  있고, 나 역시 내가 본 것
을 당신에게 얘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림에서 본 대로 나를 확인시켜 주고, 
내가 본 대로 당신을 이해시킬 때까지 우리는 대화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렇게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 63페이지로 넘어가서 그 그림을 자
세히 본 뒤 다시 이 그림을 살펴보자.  이제는 노파의 모습이 보이는가? 당신이 이 책
을 계속해서 읽어나가기 전에 그녀를 노파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오래  전에 이같은 실습에 참가하였다. 담당  교수는 
이같은 그림을 사용하여 두 사람이 같은 사물을 보고 서로 의견을 달리 하지만, 두 사
람 모두의 정당함을 분명하고 또 설득력있게 증명하였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것이다. 
  그 교수는 강의실에 큰 사이즈의 많은 카드를 가지고 왔다. 그 중 반은 33페이지에서 
보았던 젊은 여자의 상이었고, 나머지 반은 63페이지에서 보았던 노파의 상이었다.
  교수는 학생들의 절반에게는 젊은 여자의 그림을, 나머지 절반에게는 늙은 여자의 그
림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약 10초 동안 카드를 집중해서 보게 한 다음 되
돌려 받았다. 그리고 난 후 교수는 두 가지 이미지가 결합된 34페이지 그림을 스크린에 
투사한 후, 우리들로 하여금 본 것을 얘기하도록 하였다.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 중 처음에 본 카드에서 젊은 여자의 이미지와 접한 사람은 이 
그림에서도 대부분 젊은 여자를 보았다. 그리고 처음 카드에서 노파의 이미지를 본 대
부분의 학생들은 이 그림에서도 노파를 보았다.
  그리고 나서 이 교수는 한 학생으로 하여금 다른 쪽에  앉은 학생에게 자신이 본 것
을 설명하도록 시켰다. 그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늙은 여자'라니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녀는 20살이나 22살 정도밖에는 되지 않아."
  "이봐, 지금 농담하고 있는 거야. 그녀는 70살, 아니 80살은 돼 보이는데."
  "무슨 말이야. 눈이 멀었니? 이 여자는 젊고 예쁘단 말이야. 밖으로 데이트하러 나가
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런 여인이란 말이야."
  "사랑스럽다고? 그녀는 늙은 마귀 같다."
  논쟁은 계속되었지만 두 학생은 각자의 주장을 확신하고,  또 굽히지 않았다. 이상의 
모든 일은 학생들이 판단하는 데 대단히 유리한 상황 - 이 실습을  하기 전에 모든 일
에는 항상 다른 관점이 존재하고 있음을  배웠음. -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난 것이
다.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다른 관점의 존재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사실 몇몇 학생
만이 처음부터 이 그림을 다른 준거틀에 입각해서 보려고 노력했다.
  일련의 덧없는 주장들이 오고 간  후 한 학생이 스크린 가까이  다가가서 그림 위의 
선 하나를 가리켰다. "여기 젊은 여자의 목걸이가 있다." 그러자 또 다른 학생은 "아니
야, 그것은 늙은 여자의 입이다."라고 주장하였다. 그 다음부터 두 학생은  구체적인 차
이점을 중심으로 조용히 논의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한 학생씩 스크린의 그림이  두 
가지 이미지로 보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들이 조용히 또 서로를 존
중하면서 구체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동안 강의실에 있는 우리 모두도 마침내 다른 
관점에서 그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이 참고 그림을 잠깐 본 뒤에 스크린 그림을 보았다면 10초 동안에 답을 파악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여러 조직 및 다양한 사람들을 컨설팅하면서 이같은  인식에 대한 실례를 이용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를 통해 자기발전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갖는 데 필요한 깊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무엇보다도 미리 조절됨(영향받음)이 지각, 
즉 패러다임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만일 10초라는 시간이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에 이처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일생 동안 조절되어 온 결과는 어떨까? 우리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 가족, 학
교, 교회, 지장, 친구들, 동료들, 그리고 성격  윤리와 같은 현행 사회의 패러다임 - 은 
모두 소리 없이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나아
가 우리의 준거틀, 패러다임, 그리고 사고의 지도를 형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든 사례는 이같은 패러다임이야말로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원천임을 보여 주
고 있다. 패러다임을 벗어나 언행이  일치하도록 행동할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것과 
달리 말하고 행동해야 된다면, 우리는 완벽한 인격자가 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잠깐
의 조절로 젊은 여자라고 주정하게 되는 집단에  속하는 경우(90% 이상이 이에 속함), 
그녀가 길을 건너갈 때 부축해 줘야 한다는 생각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녀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행동은 당신이 그녀를 본 대로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위의 예는 성격 윤리가 갖는 근본적인 약점 중 하나를 설명해 준다. 만일 우리가 태
도와 행동의 원천인 패러다임을 검토해 보지 않고, 단지 밖으로 드러난 태도와 행동을 
바꾸려고만 노력한다면 이것은 장기적으로 보아 별 도움이 안 된다.
  여기서 소개한 지각 실험은 우리가 가진 패러다임이 대인관계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
을 미치는가를 보여 준다. 우리 자신이 사물을 분명하고 또 객관적으로 본다고 생각하
는 것처럼 비록 보는 방식은 우리와 다르지만 다른 사람 역시 자신의 관점에서는 우리
처럼 분명하고 또 객관적으로 사물을 본다고 확신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관점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는 사물을 볼 때 있는 그대로를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즉, 우리 자신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향받고 조절된 자기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 본다. 다시 말해서 만
일 자신이 본 것을 서술하기 위해 말문을 연다면, 사실은 우리 자신, 우리의 지각, 우리
의 패러다임을 서술하는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각 그들이 뭔가 잘
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의 예에서 보듯이 진지하고 명석한 다른 사람들은 사물
을 달리 본다. 즉, 각자는 스스로가 가진 독특한  경험의 렌즈를 통해 자기대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는 우리가 함께 동의하고 인정할 수  있는 사실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앞의 실험에서도 처음에는 서로 다른 그림을 통해 다르게 조절
되도록 영향을 받은 두 사람이 마침내 셋째 번 그림을 함께 보았다. 이때 이들은 동일
한 사실 - 흰색 공간과 검은 선 - 을 보았고, 두 사람 모두 이같은 사실을 인정하였다. 
사실에 대한 각자의 해석은 이전의 경험을 반영하기 때문에, 사실 자체는 해석에 아무
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우리가 자신의 기본적인 패러다임, 지도,  관점, 그리고 사회경험에 의해  조절되어진 
정도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을 하면 할수록 이러한 패러다임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
끼게 되고, 더 자세하게 검토할 수 있고, 더 철저히 사실적 실체와 비교해 볼 수  있고, 
다름 사람의 의견을 더욱 경청하고, 또 이들이 갖는 시각도 더 개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시야를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훨씬 더 객관적인 견해도 
갖게 된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갖는 위력>
  지각 실험을 통해 얻게 되는 가장 중요한 통찰력은 아마도 패러다임 전환일 것이다. 
마침내 이 이중적인 그림의 다른 면을 완전하게 "보았을 때" 갖게 되는 "아하." 경험이
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처음의 지각 때문에 제약을 받는 정도가 큰 사람일수록 더
욱 강렬한 "아하." 경험을 한다. 이는 마치 캄캄한 밤에 전등이 갑자기 켜지는 것과 같
다.
  "패러다임 전환"이란 용어는 토마스  쿤의 대표적인 저술인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쿤은  과학연구 분야에
서 지금까지 일어난 거의 대부분의 중요한 업적이 연구자가 기존의 전통, 낡은 사고방
식, 그리고 낡은 패러다임을 파괴함으로써 실현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톨레미(Ptolemy)에게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
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그는 많은 저항과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그후부터 모든 것은 
갑자기 다르게 해석되었다.
  물리학의 뉴턴 학설은 상당히 정확한 패러다임이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공학
의 기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패러다임은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것이다. 그후 과학계
는 더 정확한 예상치와 현상 설명을 가능케 해 준 상대성 이론, 즉 아인슈타인의 패러
다임에 의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세균이론(germ theory)이 발달하기 전까지 출산시 산모와 신생아의 사망률이 높았다. 
그런데 아무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나아가 전장에서도 많은 군인들이 일선에
서 치르는 전투 때문에 죽기보다는 작은  상처와 질병 때문에 더 많이 죽어갔다.  그후 
세균이론이 개발되자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었다.  즉, 이 이론은 질병에 
관한 이해를 개선시켰기 때문에 의학 분야의 극적이고 중대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오늘날 미국이란 나라가 존재함은 패러다임 전환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18세기까지 
내려오던 정부에 대한 전통적 개념은 군주제도였다. 또 왕이야말로 권리를  하늘로부터 
받는다는 왕권신수설이 지배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다른 패러다임이 개발되었
다. 이것은 바로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였다. 이것이 바로 헌정 민주주
의를 탄생시켰다. 이같은 제도는 인간이 가진 거대한 에너지와 창의성을 발휘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수준과 자유와 희망이 세게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사
회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패러다임 전환이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관찰했
듯이 성품 윤리로부터 성격 윤리로의 전환은 진정한 행복과  성공의 원천이 되는 바로 
그 부리를 무시하고 멀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이 우리를 긍정적 또는 부정적 방향  그 어디로 이끌든지 관계
없이, 또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든 지속적인 것이든 관계없이,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
는 시각을 한 가지 방식에서 다른 방식으로 바꿔 놓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환은 커
다란 변화를 가져온다. 우리가 가지는  패러다임은 옳든 그르든 우리의 태도와  행동의 
원천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대인 관계의 근원이 된다.
  나는 뉴욕의 지하철에서 어느 일요일 아침 작은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한 적이 있었
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서 신문을 읽고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생각
에 잠겨있거나 또는 눈을 감고 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체적으로 매우 조용하고 또 평
화스러운 장면이었다.
  그런데 다음 정거장에서 한 중년 남자와 그의 애들이 탑승한 순간, 아이들은 매우 큰
소리로 떠들고 제멋대로여서 전체 분위기가 금방 바뀌었다.
  아이들과 함께 탑승한 그 남자는 바로 내 옆에 앉았는데, 두 눈을 갑고 이러한 상황
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듯이 보였다. 아이들은 앞뒤로 왔다갔다 하면서 큰 소
리로 말하고, 물건을 팽개치며, 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읽고 있는 신문을 움켜잡기까지 
하였다. 매우 소란스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내 옆에 앉아있는 이  남자는 죽은 듯이 가
만히 있었다.
  화를 내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이 남자가 자기 아이들이 저렇게 
날뛰도록 내버려 두고, 자신은 무감각하게 가만히 있으면서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는 것
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승객들이 짜증을 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침내 더 이상 참
을 수 없어서 이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아이들이 저렇게 많은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을 좀 조용하게 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때야 이 남자는 마치 상황을 처음으로 인식한 것처럼 눈을 약간 뜨면서 다음과 같
이 힘 없이 말하였다. "당신 말이 맞군요. 저도 뭔가 어떻게 해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막 병원에서 오는 길인데, 한 시간 전에 저 아이들의 엄마가 죽었습
니다. 저는 앞이 캄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아이들 역시 이 일을 어
떻게 해야될지 막막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 순간에 나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내 패러다임이 바꾸
어졌다. 나는 갑자기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상황을 다르게 보았기 때문에 다르
게 생각하게 되었고, 다르게 느끼게 되었기 때문에,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나의 짜
증은 사라졌고, 화가 났던 내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어떻게 다스릴까 걱정할 필요도 없
었다. 내 마음은 온통 이 사람이 가진 고통으로 가득  채워졌다. 동정심과 측은한 느낌
이 자연스럽게 넘쳐 나왔다. "당신의 부인이 돌아가셨다고요? 저런, 안됐습니다.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할 말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거나 자신이 설정한 우선 
순위를 갑자기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면, 여기서 소개한 것과 같은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체험하게 된다. 즉, 남편이나 부인, 부모 혹은 조부모, 나아가 관리자 혹은 리더 
등과 같은 새로운 역할을 갑자기 담당해야 할 때 위와 유사한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사물을 과거와 다르게 보기만 하면 변화는 즉시 발생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것을 모르고,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몇 주,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이
상을 소모하면서 성격 윤리만 가지고 노력한다. 만일 우리가 자기 삶에 있어서 비교적 
작은 변화를 원한다면, 자신의 태도나 행동을 적절하게 조정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중요하고 또  커다란 변화를 원한다면, 자기 자신
이 가진 기본적인 패러다임을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
  소로(미국 매사추세츠 출생 수필가, 시인, 철학자)는 "악의 이파리를 수천  개 잘라내
는 것보다 뿌리를 잘라내는 것이 더 낫다."라고 했다. 이처럼 우리가 자신의 태도와 행
동에 지엽적인 변화만 주는 것을 그만 두고, 그 대신 자신의 태도나 행동의 근본 뿌리
인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때라야 비로소 획기적 개선을 달성할 수 있다.
  <관점과 존재>
  모든 패러다임 전환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하철에서 내가 체험한 즉
각적인 깨달음과는 달리 아내와 내가 우리 아들 때문에  경험했던 패러다임 전환은 느
리고 어려웠으며 심각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우리가 처음 아들에게 시도했던  방법은 
오랜 세월 동안 주입되어 온 성격 윤리와 경험에서 나왔다.
  우리 아들 문제는 우리가 가진 자녀들의 성공 척도뿐만  아니라 부모로서의 성공 척
도에 대해 우리 속에 깊이 뿌리 박힌 패러다임 때문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근원적인 패
러다임을 변화시켜 사물을 달리 보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과 그 상황 자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었다.
  아들을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아내와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또 이같
은 새로운 패러다임은 우리  자신의 인품(성품)의 개선과  성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가능했다. 
  패러다임이란 성품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왜냐하면 인간적 차원에서는 존재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무엇을 보는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날 아침 지하철에서 있었던 내 자신의 순간적 패러다임  전환인 지각적 변화는 바
로 내가 가진 기본적 성품에서 나온 결과였으며,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었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진짜 상황을 파악한 승객들 중 어떤  사람은 아내를 잃고 슬퍼하
는 그 남자의 곁에 말없이 계속 앉아 있으면서, 그 남자에 대해 약간 동정하고 죄책감
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사려가 깊은 사람은 처음부터 그 남자에게 보다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그를 이해해 주며 내가 말하기 전에 그를 도와 주려고 
했으리라 확신한다.
  패러다임은 이처럼 강력한 것이다. 왜냐하면  패러다임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렌즈를 만들기 때문이다. 패러다임 전환이 갖는 힘은 그 전환이 즉각적이든 점진적이고 
신중한 과정이든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원칙 중심의 패러다임>
  성품을 중요시 하는 것은 여러 '원칙'을 착실히 따라야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좋은 결
과를 얻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생각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물리학에 중력법칙이 
있는 것처럼, 인간세계에도 현실적이고 또 논쟁의 여지가 없는 불면의 자연법칙이 있다
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칙의 실체, 그리고 이것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아이디어는 미국 해군연
구소의 잡지인 <프로시딩스(Proceedings)>에  실린, 프랭크코크가  설명하는 패러다임 
전환 경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훈련함대에 배속된 두 대의 전함이 수일 동안 계속되는  폭우 속에서도 대대적인 해
상 기동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 나는 선두 전함에 소속되어 야간이 되자 함교에서 감
시 임무를 맡고 있었다. 안개가 너무 짙어 시야가  불분명했고, 이 때문에 선장은 모든 
활동을 감시하기 위해 계속 함교에 남아 있어야만 했다.
  완전히 어둠이 깔렸을 때 함교의 앞쪽에 근무하던 감시병이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우현 이물 쪽에 빛이 보입니다."
  "불빛은 가만히 있는가, 아니면 고물(배뒷전)쪽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하고 선장이 
소리쳤다. 감시병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선장님" 하고 대답하였다. 이는  우리 배가 그 
배와 충돌할 수 있는 위험한 코스에 들어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장은 신호수에게 소리쳤다. "저쪽 선박에 충돌 코스에 들어와  있다고 신호
를 보내라. 그리고 항로를 20도 방향으로 바꾸라고 지시하라." 
  저쪽에서 신호가 되돌아왔다. "당신들이 항로를 20도 바꾸시오."라는 연락이었다.
  선장은 "나는 선장이다. 20도를 움직여라."라고 명령하였다.
  "저는 이등 항해사입니다. 선장님께서 20도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응답이 돌아
왔다.
  그러자 선장은 매우 화가  나서 소리쳤다. "우리는 전투함이다.  당장 진로를 20도로 
변경하라."
  조명빛과 함께 다시 응답이 돌아왔다. "저흰 등대입니다."라고.
  우리는 즉시 항로를 변경하였다.
  여기서 선장이 경험한 - 이 얘기를 읽으면서 우리도 경험한 - 패러디임 전환은 주어
진 상황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보도록 바꾸어 놓는다. 우리는 제한된 지각 때문에 실
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실체의 파악은 안개 속의 선장 경우처럼 우리
가 일상적인 삶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원칙은 등대와 같다. 따라서 이것은 파괴될  수 없는 자연법칙이다. 불후의 명작  '십
계'를 만든 세실 비 데밀 감독은 "우리가 율법을 파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
리는 단지 율법을 어김으로써 자신을 파괴할 뿐이다."라고  영화 속에 담겨진 율법, 즉 
원칙의 진리에 관해서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한 경험과 또 살아오면서 주입된 관점들을 통하여 스스로의 생활과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들여다 본다. 그런데 패러다임인 지도는 어떤 지역(땅) 그 
자체는 아니다. 지도인 패러다임은 '주관적 실체'로서 단지 어떤 지역(땅)을 기술하고자 
하는 시도에 불과하다.
  '객관적인 실체'에 해당되는 지역(땅) 그 자체는 인간의 지적 성장과 행복을 지배하는 
요지부동한 '등대'의 원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원칙이란 자연법칙을 말한
다. 또 이 자연법칙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모든 문명사회의  근본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탱되고 번영해온 모든 가정과 조직의 뿌리에 해당된다. 나아가 우리 사고의 
지도인 패러다임이 그 대상인 지역(땅)을  아무리 정확하게 묘사할지라도 지역 자체의 
존재를 바꾸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면  패러다임은 그 자체가 아무리 정확해도  자연법
칙, 즉 원칙을 바꿀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이나 자연법칙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회역사의 순환과정을 깊이 
생각하고 검토하는 사람에게는 명백하게 판명된다. 이같은 원칙들은 시간의 흐름에  관
계없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한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이 원칙을 인정하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정도에 따라 생존과 안정, 분열과 멸망으로 가는 길이 결정된다.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는 원칙들은 비법을 말하거나 '종교적인'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
은 아니다. 이 책에서 가르치는 원칙에는 어떤 특정한 종교나 신앙에만 해당되는 독특
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들 원칙은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대부분의 주요 종교의 일부분
일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사회사상이나  윤리체계의 일부이다. 이들 원칙들
은 자명한 것으로 누구든지 그 타당성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이같은 원칙과 법칙은 우리 모든  인간의 신체의 일부, 의식의  일부, 그리고 양심의 
일부에 해당된다. 이 원칙들은 각자의 사회적인 물들음이나 또 이것을 신봉하는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 모든 인류 사회에 존재한다. 이 원칙들은 존중되지 않거나 잘못 물들어
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시적으로 잠겨져 있거나 잠시 얼어 붙어 있을 뿐이다. 
  예컨대 '공정성'의 원칙을 들어보자.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공평 및 정의에 관한  모든 
개념을 발전시켰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이들이 비록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사회경험들
에 물들어 있음에도 천부적으로는 공정성이란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공정
성의 정의와 달성 방법을 논하는 데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으나, 이 원칙의  존재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른 예로 '성실(언행일치)'과 '정직'을  들어보자. 이는 사람들 간의  협조와 개인 및 
대인관계의 장기적인 성숙에 근원이 되는 신뢰의 기초가 된다.
  또 다른 원칙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기본개념은  이
러한 원칙과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본다. 즉, 모
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로부터 누구에 의해서도 빼앗길 수 없는 생명, 자
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다른 원칙으로 '봉사'가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
의 다른 원칙에는 '퀄리티'(자질, 양질) 도는 '우수성'(탁월성)을 들 수 있다.
  나아가 '잠재성'(잠재능력)의 원칙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태아로  태어나 성장 및 발
달을 할 수 있으며, 점차 더 큰 능력을 발휘하여 더 큰 재능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보
는 것이다. '잠재성'의 원칙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성장'의 원칙이다. 이는 
'인내', '훈육', 그리고 '격려' 등과 같은 원칙을 동반한, 잠재능력 및 재능을 개발하는 과
정을 의미한다.
  원칙은 실제적인 상황을 해결하는 '실행방법'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실행방법이란 
구체적인 활동이나 행동을 말한다. 어떤 상황에 잘 맞는 방법이 다른 상황에서는 잘 들
어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 큰 아이를 키울 때의 방법이 둘째 아이에게는 잘 맞
지 않는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따라서 실행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원칙은 어디에나 보편적으로  적
용될 수 있는 기본적인 진리이다.  원칙이란 각 개인은 물론, 부부,  가족, 그리고 모든 
공사 조직체에 적용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의 내면 속에 이같은 진리, 즉 원칙이 습관으
로 자리잡을 때 그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수많은 실행방법의 
창안 능력이 가지게 된다. 
  원칙이 '가치'는 아니다. 도둑이나 범죄자  집단도 공유하는 가치관은 가지고  있겠지
만,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원칙에는 위배되는 것이다. 가치가 지도라면,  원
칙은 그 지도가 나타내는 지역(땅)에 해당된다. 다라서 우리가 올바른 원칙들을 중요하
게 생각할 때, 우리는 땅과 같은 실체에 관한 지식, 즉 진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원칙이란 영구 불면의 가치를 갖는 인간 행동의 지침이다. 따라서 원칙이란 근본적인 
것이다. 원칙은 그 자체가 이미 자명한 것이기 때문에, 논쟁할 여지가 전혀 없다.  원칙
이 갖는 자명한 본질을 재빨리 파악하는  한 가지 방법은, 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을  해 
가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고 시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불공정, 속임수, 비열함, 무익함, 열등함,  그리고 퇴폐성 
등이 성공과 행복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기본요소라고 믿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들이 이같은 원칙들에 관해 정의하고, 표현하고,  그리고 실천하는 방법에 대
해서는 의견을 달리하고 논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들 원칙들이  존재한다
는 사실에 대해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가진 사고의 지도인 패러다임이 이같은 원칙, 즉 자연법칙에 가까워지면 질수
록, 이들 패러다임은 보다 더 정확해지고 더 좋은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성공적
인 개인 및 대인관계를 위해서는 올바른 지도, 즉 정확한 패러다임이 자신의 태도나 행
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온갖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보다 훨씬 더 크고 무
한한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성장 및 변화의 원칙들>
  성격 중심의 접근법이 갖는 커다란 호소력과 대중적 매력은 우리가  인생의 질 - 개
인이 갖는 효과성과 깊고 윤택한 인간관계 - 을 높이는 데 빠르고 쉬운 방법이 있다고 
주장하는 데 있다. 이 접근법은 다시 말해서 자연법칙적 과정과 성장 없이도 이같은 목
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주장은 알맹이 없는 구호일 따름이다. "일하지 않고  부자가 되는 법"
을 약속하는 "일확천금"식 계책일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같은 방법으로 잠시 성공
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계교 부리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성격 중심의 접근법은 착각에 불과하고 속임수일 뿐이다. 따라서 이같은 얄팍한 기법
과 응급처치식 방법을 통해 가장 좋은 결과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디트로
이트 지도를 가지고 시카고의 어느 장소를 찾아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
  성격 중심 접근법의 뿌리와 결과에 대해 예리하게 관찰한  에리히 프롬의 글을 살펴
보자.
  "오늘 우리는 마치 자동 인형처럼 행동하는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자신을 
알지도 또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가 알고 지향하는 있는 유일한 사람은 실존하지는 않
으나 자기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 인물은 정 있게 대화하는  대신 
쓸데없는 말로 재잘거리고, 참다운 웃음 대신 억지 미소만  짓는다. 그는 또 진짜 고통
스러움을 감추고 자포자기의 무딘 감정만을 내보인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그는 치유될 수 없는 자발  행위 및 개성의 결핍증으로 고
통을 받고 있다. 둘째, 그는 이 땅을 걸어  다니는 수백만의 우리들 대부분과 본질적으
로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생명체의 성장과 발달에는 반드시 순서에 입각한 몇 가지 단계들이 있다. 예컨
대 어린 아이는 뒤집고, 앉고, 기어다니는 것을 배운 다음 비로소 걷고 달리는 것을 배
운다. 그런데 이들 각 단계는 모두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각 단계마다 시간을 요구한다. 
나아가 그 중 어느 한 단계도 건너뛸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은 인생의 모든 국면, 즉 모든 발달과정에 적용된다. 예컨대 우리가 피아
노 치는 것을 배우든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과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배우
든 이것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것은 개인, 부부, 가족, 그리고 모든 조직에도 그대로 적
용된다.
  물질적 대상을 다루는 영역에서는 이같은 사실, 즉 '과정'이 존재한다는 원칙을  그대
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러나 정신적 영역, 인간관계의 영역, 나아가 개인적  성품을 
다루는 영역에서는 이를 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이같은 원칙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를 따르며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 결과 우리는 가끔 지름길을 찾는다. 즉, 시간과 노력을 적게 들
이기 위하여 몇 개의 중요한 단계를 건너뛰면서 원하는 성과를 얻으려 한다.
  그런데 자연법칙의 과정에서 발달의 지름길을 찾으려고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만일 당신이 보통 정도의 테니스 실력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테니스 선
수와 겨루어 보기로 결정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적극적 사고 그 자체만 가
지고 프로선수에 대항해 효과적인 시합을  할 수 있겠는가? 피아노  연주 실력은 아직 
초보인데, 콘서트홀 수준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면 친구들이 이를 믿겠는
가? 그 답은 분명하다. 발달과정을 무시하거나 생략하면서 지름길을 찾는다는 것은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자연법칙에 반하는 것으로 지름길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는 단지 실망과 좌절만 가지고 올 따름이다.
  우리가 어느 분야에서건 관계없이 10점이 만점일 때, 2점 수준에서 5점 수준으로 올
라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3점 수준을 거쳐가야 한다. 왜냐하면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이기 때문이고, 우리는 한 번에 한걸음씩밖에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질문을 하거나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선생님께 알려서 자신의  현재 수준을 
알게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배우지도 발전하지도 못한다. 우리가 아는 척한다면 언젠가
는 반드시 탄로가 날 것이므로 오랫동안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교육의 첫 단계에 해당된다. 소로우는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만일 우리
가 항상 자신이 가진 지식을 사용한다면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우리의 무지를 어떻
게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언젠가 내 친구의 딸들인 두 젊은 여성이 나를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자기 아버지의 
완고함과 이해 부족을 불평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들은 나타날 결과가 겁이 나서 자기 
부모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모의 
사랑과 이해, 그리고 지도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내가 그 아버지와 대화해 본  결과, 그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성질이 급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과 자신의 정
서발달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거절하였다. 그가 변화를 위한 
첫발을 떼는 데는 자신의 자존심을 포기하는 것 그 이상이 필요했다.
  아내, 남편, 자녀들, 친구, 혹은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남
의 말을 경청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높은  정서적 발달을 요구한다. 
경청에는 높은 수준의 성품인 인내심, 솔직함, 그리고 이해심이 포함된다. 그런데  우리
는 낮은 정서수준에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높은 수준의 충고를 너무나 쉽게 한다.
  테니스나 피아노를 치는 일과 같은 경우 우리들의 발달수준은 상당히 분명하다. 왜냐
하면 이같은 경우 속임수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품 및 정서 발달과 같은 영
역에서는 발달 수준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낯선 사람이나  혹은 
동료에 대해 자신을 "꾸미거나" 어떤 "척" 할 수 있다.  사실과 달리 마치 그런 것처럼 
가장할 수 있다. 그리고 한참 동안을 그렇게 지낼 수도 있다. 특히 낯선 대중을 상대할 
때 그렇게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자신을 속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자기 
내면의 진실된 세계를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더불어 살고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들
도 역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즈니스 업에서 자연법칙에 따른 성장과정을 무시하고  지름길을 찾고자 시도
할 때 나타나는 결과를 종종 목격해 왔다. 이때  경영자들은 설복적인 연설, 스마일 훈
련, 외부의 개입, 기업인수, 합병 등을 통해 생산성, 품질, 사기 및 고객 서비스 등을 개
선시키는 새로운 기업 문화를 '구매' 하려고 시도한다. 그런데 경영자들은 이같은  인위
적 조작으로 인하여 신뢰의 분위기가 낮아진다는 사실을 무시해 버린다. 만일 이 같은 
방법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으면, 이들은 또 다른 성격 위주의 기법을 찾아 나선다. 그
런데 이같은 성격 중심의 접근법은 높은 수준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 기업문화
에 있어 그 전제조건인 자연법칙의 원칙과 절차를 계속해서 무시하는 것이다.
  나는 수년 전에 내 자신이 아버지로서 이 원칙을 깨뜨렸음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니 3살 난 딸아이의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 딸아이는 자기가 받
은 선물을 모두 꼭 움켜지고, 다른 아이들이 가지고 놀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우선 내
가 주목한 것은 우리 딸아이의 이기적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몇 명의 다른 아이 부
모들이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나를 어쩔 줄 모르게 했던 것은 내가 
그 당시에 대학에서 인간관계론을 강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들 부모들의 기
대와 생각을 느꼈고, 또 알고 있었다.
  그 방안의 분위기는 정말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은 어린 딸 주위에 몰려들어 서로 손
을 내밀고서 자기들이 방금 준 선물을 같이 갖고 놀려고 야단이었고, 우리 딸은 결사적
으로 저항하였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우리 딸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가지며 사는 것을 가르쳐야겠다. 나누어 가지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하
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가 아닌가?'
  그래서 나는 처음에 단순히 간청만 하였다. "얘야,  친구들이 준 장난감을 함께 나누
어 가지고 놀아라."
  "싫어." 하고 딸은 딱 잘라 대답하였다.
  나의 둘째 번 방법은 약간 타당한 이유를 대는 것이었다. "자, 얘야, 친구들과 장난감
을 나누어 갖고 놀아야지. 이 다음에 네가 친구들 집에 갔을 때 그 애들도 자기 장난감
을 나누어 갖고 놀지 않겠니?"
  또 다시 딸아이의 즉각적인 대답은 "싫어."였다.
  딸아이의 이같은 반응이 내가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때
문에 나는 더욱 더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셋째 번 방법은 뇌물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자, 아빠 말을 들으면 특별한 선물을 주지. 맛있는 껌을 
주마."라고 말하였다.
  "껌 따윈 필요 없어요."라고 아이는 소리쳤다.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넷째 번 시도는  위협과 공포를 동원하는 방법이었다. "말
을 듣지 않으면, 진짜 혼날 줄 알아라."
  "상관없어요."라고 딸애는 울면서 소리쳤다. "이 선물은 내 것이에요. 딴 애들과 나누
어 갖고 놀 필요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때 우리 딸은 아마도 남들에게 나누어 주기 전에  이 장난감들을 소유하는 경험이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만일 내가 어떤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을 남
에게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우리 딸은 바로 이같은 경험을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높
은 수준의 정서적 성숙을 지닌 아빠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에 나는 내 딸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부녀간의 관계보다는 딸아이 친
구 부모들 앞에서의 내 체면에 더 많은 신경을 썼던 것이다. 나는 단지 내가 옳다고 지
레 판단해 버린 것이다. 나아가 딸애는 무조건 나누어  가져야 하며, 바로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내 자신이 낮은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딸아이에게  높은 수준의 기대를 하였
는지도 모른다. 나는 딸아이에게 인내심이나 이해심을 보여줄  수도 없었고, 또 주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다른 애들에게 장난감을 주도록 기대한 것이다. 
결국 나는 자신의 부족함을 보상하려는  시도에서 나의 지위와 권한을  동원하여 내가 
원하는 행동을 딸아이에게 강요하였던 것이다.
  완력을 동원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약하게 만든다. 이것이 완력을 빌려오는 당사자
를 약하게 만드는 이유는 목적달성을 위해 외적 요소에  대한 의존심을 키우기 때문이
다. 또 힘을 동원하는 것은 독립적 사리판단력, 성숙  및 내면적인 자제력의 발달을 방
해하기 때문에 강요받는 사람들도 약하게 만든다. 나아가 마침내는 대인관계  자체에도 
악화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협동심 대신 두려움이 앞설 때 개입되는 두 사람은 더욱 개
인적이고, 또 방어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빌려온 힘의 원천 - 이는 크기에서의 우위나 물리적인  힘, 권한, 자격, 신분, 
외모 혹은 과거의 업적 등  여러 가지일 수 있다. -  이 변화하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만일 내가 그때 좀더 성숙하였더라면, 나는 스스로가 가진 내면적 강점 - 나눔과 성
장에 대한 나의 이해, 그리고  사랑과 양육에 대한 나의 능력  - 에 의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이같은 능력을 가졌더라면 딸아이에게  장난감을 
나누어 주고 노는 여부를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딸아이를  설득해 
본 후에, 모두가 좋아하는 재미있는 놀이를 함으로써 우리 아이에게 쏟아지는 다른 아
이들의 정신적 압박을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를 통해 아이들이 정말로 어떤 것에 대한 소유감을 일단 가진 다음에는 매우 
자연스럽게, 자유롭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것을 나누어 가진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
다. 또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우리가 가르칠 수 있는 시기와 가르칠 수 없는 시기가 있
음을 배웠다. 인간관계가 서먹서먹하고 서로  감정이 상해 있을 때는 가르치려고  하는 
시도가 자칫하면 비판이나 무시의 형태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사이가 좋을 때 조용히 
아이 혼자만 데리고 어떤 내용을 가르치거나,  가치에 대해 논의하게 되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에는 이렇게 할 감정의 성숙도가  없었
고, 또 내가 가진 인내심과 자제 능력의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쩌면 소유감이란 진정한 나눔의 감정보다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결
혼 생활이나 가족 생활에서 그저 기계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서로 나누어 가지려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까지도 소유해 보지 못함으로써 자신을 줄 수 없을 것이
며, 자신에 대한 아이덴티티와 자기 가치 의식을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성장을 진정으로 돕는 일이란 아이들이 소유 의식을 갖도록 허용해 줄 수 있
는 만큼 인내심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이 솔선수범을 통해 나눔의 가치
를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명해져야 한다.
  <우리가 문제를 보는 방식이 바로 문제이다>
  사람들은 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개인, 가정, 그리고  조직의 활동에서 일어나는 좋은 
결과들을 보게 되면 호기심을 느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개인적 강인함과 성숙, 가족
의 단합과 팀워크, 그리고 탄력적인 에너지를 창출하는 조직 문화를 보고 감탄하지 않
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들이 하는 즉각적인 질문이야말로 이들이 가진 기본적 패러다임을 잘 드러
내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하지? 나에게도 그 기법을 가르쳐 주게." 이렇게 말하는 이
면에는 "나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스런 상황으로부터 나를  구해 줄 수 있는 묘책이나 
비법을 알려주시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들은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비법을 가르쳐 줄 사람들을 찾을 것이다. 그리
고 잠시나마 그러한 기술과 기법들은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표면적인 문제나 격렬한 통증을 아스피린이나 반창고같은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 깔린 만성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는 한 결국 심각한 새로운 증
상이 다시 나타나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응급처치식으로 급성에 해당하는 문제와  고통
을 치료하겠다고 접근하면 할수록, 그 바탕에 갈린 만성적인 증상도 더 심해지게 된다.
  이처럼 우리가 문제를 보고 해결하려고 하는 그 방식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제 본 
장에서 소개된 몇 가지 내용을 되새겨 보고, 성격 중심의 사고방식이 미치는 영향을 살
펴보기로 하자.
  나는 관리능력 향상과정에 여러 번  참가하였다.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 그들을 친절하고 공정하게 대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의 애사심을 전혀 느낄 수 없다. 만약 내가 아파서 하루라고 집에서 쉬고 출근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들은 대부분의  근무시간을 잡담이나 수다를 떨면서  보낼 것이다. 
왜 나는 우리 직원들을 보다 독립적이고 또 책임감있게 훈련시키지 못할까? 아니면 왜 
그렇게 할 수 있는 직원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성격 중심의 접근법을 사용한다면 이같은  현상에 대해 어떤 극단적인  조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조직을 한바탕 뒤흔들어 놓거나  또는 직원들을 정신 없이 바쁘게 
한다. 이같은 자극을 주는 것이 조직 구성원들을 각성시키고, 현재 자신들이 차지한 직
장이나 위치에 대해 감사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만일 이같은 조처로도 안 된다면 직원들을 몰입시킬  수 있는 동리유발 훈련 
프로그램을 찾아나설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장인 내가 이같이 명백하게 신의없는 행동
을 한다면 직원들은 내가 진정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는지를 묻지 않
겠는가? 직원들은 내가 자기들을 기계의 부품처럼 다루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까? 실상 
부품처럼 간주하는 면도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깊은 양심의 눈으로 직원들을 보고 있는가? 또 직원들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문제의 일부임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충분치 못하다. 나는 하루종일, 매일매일, 또 일주일  내
내 압박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그 동안 시간관리  세미나에도 참석해 보았고, 대여
섯 가지나 되는 시간관리 시스템도 사용해 보았다. 물론 이것이 약간 도움이 되긴 했지
만, 아직도 내 생활은 내가 바라는 대로 행복하고, 생산적이고, 또 평화스럽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성격 중심의 접근법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다고 주
장한다. 즉, 무엇인가 다른 새로운 시간관리 방법이나 세미나는 이런 고민을 좀더 효율
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주는 데 도움을 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효율성만이 정답이 아닐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즉, 보다 적은 시간을 투입하
여 더 많은 것을 이룩하는 것이 과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삶을 통제하는 상황이나 사람들에 대해 반응하는 개인의 속도를 증가시키기만 할 것인
가?
  여기에는 내가 보다 깊고 원천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될 그  무엇이 있지는 않을까? 
이것이 내 시간, 내 생활, 그리고  나 자신의 본질에 관한 시각에  영향을 미치는 자신 
속에 있는 어떤 패러다임은 아닌가?
  우리의 결혼 생활은 이제 권태기에 들어섰다. 이제 더 이상  다투지도 않는다. 또 우
리는 서로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우리 부부는 함께 상담을  받기도 하고, 여러 가지 다
른 시도도 해봤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에  가졌던 사랑의 감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문제를 성격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내 배우자가 나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
법을 가르쳐 주는 어떤 세미나나 새로운 책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만일 이같은 방법으
로 해결이 안 되면, 다른 여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만이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랑을 
제공해 준다고 본다.
  그런데 실제로 문제를 가진 것은 나의 배우자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또 내가 배
우자의 약점을 드러나게 하고, 상대방의 행동에 따라 나도 똑같이 대응해 가며 살아가
는 것은 아닐까?
  나의 배우자, 결혼 생활,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관해 내가 가진 어떤 기
본적인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근본적으로 성격 윤리가 갖는 패러다임이 바로 우리가 문제를 보는 방식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제 이해할 수 있
는가?
  알게 모르게 성격 윤리가 하는 공허한 약속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환상을 가진다. 나
는 미국 전역을 여행하고 여러 회사들과 일을 하면서, 긴 안목을 가진 경영자들은 진부
한 문구에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하는 것 외에  새로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동기 유발식' 강연가나 단지 흥분만 야기시키는 선동술에  대해 등을 돌린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들은 보다 실질적인 것을 원한다. 또 이들은 자연법칙에서 볼 수 있는 과정을 원한
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아스피린이나 반창고 이상의 것을 원하고 있다. 이들은 만성적
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고, 장기적으로 성과를 가져다 주는 원칙에 초점을 
맞춘다.
  <새로운 차원의 사고>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들을 발생시킨 
그 당시에 갖고 있던 사고 방식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가 자신과 주위를 살펴보면, 성격 윤리의 틀 안에서 생활하며 대인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발생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이 심각하고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가 만들어졌던 피상적인  수준의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우리가 이처럼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더 깊고 새로운 차원의 사고방식 
- 성공적인 인간과 효과적인 대인관계의 영역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여러 가지 원칙
에 근거한 패러다임 - 이 필요하다.
  이러한 새로운 차원의 사고방식이 바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 다루고 있
는 내용이다. 새로운 차원의 사고방식은 개인적 효과성과 대인간의 효과성을  달성하기 
위하여 원칙 중심으로, 성품에 근본을 두고, 그리고 "내면에서부터 변화하여 외부로 향
하는" 접근법을 말한다. 
  "내면에서부터 변화하여 외부로 향하는" 것은 물론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의
미한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 가장 깊숙이 있는 
것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패러다임, 성품, 그리고 동기 등이  있
다.
  이 방법은, 만약 우리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원한다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창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부정적인 에너지를 강화하는 대신 이를 피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가 좀 더 명랑하고 협조적인 10대 자녀들을 갖기
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보다 이해심이 많고, 공감적이며, 또 일관성있게 사랑을 
베푸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만약 우리가 직장에서 좀더 많은 자유를 갖고 자신
이 맡은 직무에 더 큰 자율권을 가지려면, 우리 자신이 먼저 더욱 책임감이 있고, 남을 
도와주고, 또 회사에 기여하는 직원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남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려
면, 먼저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끝으로  우리가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재능과 같은 2차적인 강점을 갖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성품과 같은 1차적인 강점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내면에서부터 시작하는 접근방법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개인의 승리'가 다른 사람들과
의 관계인 '대인관계의 승리'를 앞선다고 본다. 따라서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하고 그  약
속을 지키는 것에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 또한 
이 접근법은 성품보다 성격을 앞세우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본다. 즉, 자신을 개선
하기 이전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것은 결국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면에서부터 시작하라."는 접근방법은 과정을 의미한다. 또 이는 인간의 성장과 발
달을 지배하는 자연법칙에 근거를  두고 있는, 지속적인 자기쇄신의  과정이다. 이것은 
점진적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책임있는 독립성과 효과적인 상호의존성으로 이끌어가는 
상향적인 나선형 성장을 말한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컨설팅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 중에는  멋진 
사람, 재능있는 사람, 행복과 성공을 얻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 꾸준히 탐구를 하는 
사람, 그리고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등 아주 다양했다.  나는 또 회사 중역, 대학생, 
교회 및 사회단체, 가족 및 결혼한  부부들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한 적도 있다  이같이 
다양하고 수없이 많은 경험에 입각해도,  궁극적인 문제해결 방안 및 지속적인  행복과 
성공이 외부로부터 출발하여 내면으로 들어오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외부에서 시작하여 내면으로 접근하는 패러다임이 가지고 오는  결과는 사람들로 하
여금 불행히도 자기 자신은 희생당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또 무능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나아가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약점에 초점을 둘 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주위환경
이 자기의 정체된 현 상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로 상대방이 변화하
기를 원하며, 상대방의 '잘못'을 열거하고, 또  상대방을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불행한 부부를 본 적이 있다. 
  나는 노사간의 논쟁도 수없이 보아  왔다. 노사간의 논쟁에서 사람들은 마치  신뢰의 
기초가 단단할 때나 가능할 수 있는 행동을 강요하는 규정을 만드느라 엄청난 양의 시
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나의 가족들은 지구에서 '가장 정치상황이 뜨거운 지역'인  세 곳, 즉 남아프리카, 이
스라엘, 아일랜드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나는 이러한  지역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문
제의 원천이 아마도 외부에서 출발하여 내부로 들어오고자 하는 지배적인 사회적 패러
다임의 결과라고 본다. 분쟁과 갈등에 개입된 각 집단은 문제가 바로 상대집단인 "저기
서 나오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상대방이 "개선되거나"  또는 갑자기 "사라져" 준다
면 문제 자체는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내면에서부터 시작하라."는 접근법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극적인  패러다임 전환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 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인  성격 윤리에 물들어 있고, 
그것에 의해 강력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가 한 개인적 경험, 수천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컨설팅하면서 얻은 체
험, 그리고 여기에 추가하여 역사를 통해 성공한 사람들과 빛나는 업적을 남긴 성공적 
사회에 대한 세심한 검토 결과에 의하면, 이  책의 7가지 습관 속에 포함된 여러 가지 
원칙들은 이미 우리들 내면에 그리고 양심과 상식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믿게 되
었다. 따라서 우리가 이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개발하여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고, "내면에서부터  시작하여 외
부로 향하는" 새롭고, 더 심오하고, 나아가 다른  차원으로 가는 패러다임 전환이 반드
시 필요하다.
  우리가 이같은 원칙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또 자신의 삶에 통합시키기 위해 노력한
다면 엘리엇이 말한 다음과 같은 진리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우리는 탐구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든 탐구의 귀착지는 우리가 시작한 곳
에 도달하는 것이며, 또한 바로 그 장소를 처음으로 아는 데 있다.
  
    7가지 습관에 대한 개관
  사람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에 따라 판명된 존재다. 따라서 우수성이란 단일 행동이 
아니라 바로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
  우리의 성품은 근본적으로 습관의 복합체이다. "우리가 생각의 씨앗을 뿌리면 행동의 
열매를 얻게 되고,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를 얻는다. 습관의 씨앗은 성품을 
얻게 하고, 성품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처럼 습관이란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습관이야말로 일관성  있
게 주로 무의식적인 유형으로 끊임없이  또 매일매일 우리의 성품을 나타내고,  개인의 
성공 혹은 실패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교육자 호레이스 만(Horace Mann)은 "습관은 밧줄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습
관이란 밧줄을 매일 짜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짜여진  습관은 절대로 파손되지 않는
다."라고 했다. 나는 그가 말한 마지막 부분에 대해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습관
이란 깨질 수도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습관은 학습될 수 있고, 학습을 통해 떨쳐
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습관이란 응급처치식으로 짧은 시간에 형성되는 것
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습관이 형성되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고, 나아가 당사자의 무한
한 결의와 몰입을 요구한다.
  아폴로11호의 달 여행을 지켜본 사람들은 달에 착륙한 최초의 우주인들이 달 표면을 
걷고 그후에 지구로 귀환하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랬다. "환상적이다." 혹은 믿어지
지 않는다." 등과 같은  찬사만으로는 이같은 역사적 사건을  묘사하는 데 부적절했다. 
우주인들은 달에 도달하기 위해 거대한 지구의 중력을 돌파해야 했다. 우주선이 발사되
어 처음 몇 분간 몇 마일을 비행하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의 양은 그 후 며칠에 걸쳐 
50만 마일을 여행하는 데 드는 에너지의 양보다 더 많다.
  습관 역시 거대한 중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닫고 인정하고 있
는 것보다 더 큰 중력인 것이다. 할 일을 뒤로 미루는 것, 성급함, 상대에 대한  혹평이
나 비판, 그리고 이기심 등과 같은 몸 깊숙이 배어든 습관적 경향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의지력과 생활상의 큰 변화가 요구된다. 이러한 습관적 경향들은 효과성의 기본
원칙을 깨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처음 '발사'에 해당되는 시작에는 굉장한  노력
이 요구되지만, 일단 중력권을 돌파하고  나면 새로운 공간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다. 
  모든 다른 자연의 힘처럼 중력 역시 우리에게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
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몇몇 습관들의 중력은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지 못하
도록 방해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물체가 제자리에 있게  하는 
것, 유성들이 자기의 궤도를 유지하게 하는 것,  그리고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유지하는 
것 등은 모두 이같은 중력 때문이다. 중력이란 하나의 강력한 힘이기 때문에 만일 우리
가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면, 인생에서 성공을 가져오는 데 필요한 친화력과 질서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습관'에 대한 정의>
  우리는 습관을 지식, 기술 그리고 욕망의 혼합체로 정의하고자 한다. 
  지식이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왜 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패러다임이다. 기술
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즉 방법을 말한다. 욕망이란 하고 싶어하는 것, 즉 동기를 말한
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무엇인가를 습관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상의 3가지  모두를 
가져야만 한다.
  우리가 직장 동료, 배우자 그리고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데 '비효과적' 일 수  있
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그들에게 끊임없이  말하자면, 그들이 하는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인관계에 대해 올바른 원칙을 찾아 내
지 않는 한, 상대방의 말에 경청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상대방과 효과적인 대인관계를 갖기 위해서 상대가 하는 말에 경청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해도 우리에게 그 기술이 없을지도 모른다. 즉, 우리는 다
른 사람이 하는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방법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말에 경청할 필요성과  그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경청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이것은 우리의 생활에 습관이 되지 못한
다. 이처럼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상과 같은 3가지 차원이 모두 필요하다.
  성품과 관점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하나의 상승과정이다. 즉, 성품이 관점을 변화시키
고, 관점은 다시 성품을 개선시킨다. 그리고 이것은  나선형의 상향적 성장방향으로 이
동한다. 우리가 지식, 기술, 그리고 욕망을 중점적으로 다루면 개인 및 대인관계의 효과
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가짜 안
정감의 원천이었던 낡은 패러다임을 타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변화란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다.  변화란 더 훌륭한 목적과 미래를  위해 
현재 생각하고 원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존재하는 목적이자 얻기 위해 설계되어진" 행복을 가져다 준다. 행복을 
부분적으로나마 정의한다면, 행복이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위해 현재 우리가  원하
는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욕망과 능력의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성숙의 연속선>
  7가지 습관은 일련의 분리된 단편적인 심리학적 공식이 아니다. 7가지 습관은 성장의 
자연법칙과 조화를 이루면서, 개인적 효과성과 대인관계의 효과성을 개발하는 데  점진
적이고 순차적이며 완전히 통합된 접근방식을  제공해 준다. 일곱 가지 습관은  우리를 
'의존적 단계'에서 출발하여 '독립적 단계'로, 그리고 '상호의존적 단계'로 점진적으로 나
아가게 한다.
  우리는 인생을 유아기로부터 시작한다. 이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한
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에 의해 지시받고,  양육되고, 생명도 보호받는다. 만일 이같
은 절대적인 보호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단지 몇 시간 혹은 기껏해야 며칠밖에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점차 흘러가면서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재정적으로 
점점 더 독립적으로 되어 간다. 우리는 스스로를 마침내 돌볼 수 있게 되고, 내적 통제
를 할 줄 알며, 나아가 자신감도 갖게 된다.
  이 단계를 지나 성장과 성숙을 계속하면서 자연의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
을 파악하게 된다. 아울러 사회를 포함한 자연을 지배하는 생태계를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 우리의 본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인간생활 역시 
상호의존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유아로부터 성인에 이르는 성장과정은 자연 법칙과 일
치한다.
  또한 성장에는 많은 차원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육체적으로 완전한 성숙을 이룬
다는 사실이 반드시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인 성숙을 동시에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이와 
반대로 어떤 사람이 육체적으로 의존적이라는 사실이 그가 반드시 정신적 및 감정적으
로 미숙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성숙의 연속선에서 의존적 단계는 상대방이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이다. 즉, 상대방이 
나를 돌봐준다. 상대방이 나를 위해  행동한다. 또 상대방이 나를  위해 행동하지 않을 
때 나는 상대방을 비난한다.
  독립적 단계에서는 내가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이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 내가 
책임을 진다. 나는 스스로에 의지한다. 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상호의존적 단계는 우리가 주체가 되는  패러다임이다.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재능과 능력을 함께 결합하면 더 큰 일을 해
낼 수 있다. 
  의존적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 독립적인 
사람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상호의존적인 사람은 더 큰 성과
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노력과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결합한다.
  만일 내가 육체적으로 의존적인 상태, 즉 신체가 마비되거나 불구가 되거나 혹은 다
른 신체적인 제약을 받는 경우라면, 자를 도와 줄 상대방을 필요로 할 것이다. 또 내가 
감정적으로 의존적인 상태라면, 인간적 가치 및 안정에 대한 감각은 나에 대한 상대방
의 견해로부터 나오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한다면, 나는 곤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만일 내가 지적으로 의존적이라면, 나는 상대방이 내 대신 사고해 주고 나아가 
나의 삶의 문제도 대신 생각해 주길 원할 것이다.
  만일 내가 육체적으로 독립적 단계에 있으면, 스스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또 정신
적으로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으며, 하나의 추상적 개념으로부터 다른 개념으로 옮
아갈 수도 있다. 나는 창의적이며, 분석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나아가 나의 생각을  이
해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하고  조직할 수 있다. 감정적인  내적 통제도 가능하다. 
나의 가치판단은 상대방으로부터 사랑받거나 잘 대접받는 것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이처럼 독립적인 단계가 의존적인 단계보다 더 성숙되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독립적 단계 그 자체로는 주요한  성취이지만 그렇다고해서 이것이 가장  높은 단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에서는 독립적 단계가 최상의 패러다임이다. 나아가 독립
적 단계는 많은 개인들과 사회가  추구하는 공인된 목표가 되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대부분의 자기개선 훈련 프로그램은 독립적이 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의사소통, 팀
워크, 협동 등의 가치보다 우위에 놓고 있다. 
  여기에서 독립적 단계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의존적 단계의 문제점 때문이다. 
의존적 단계에서 상대방이 우리를 통제하고, 제한하며, 이용하고, 조종하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이라는 개념만큼 많은 수의 의존적인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도 
없다. 그 예로 우리는 독립적이란 미명하에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이혼을 하고, 자
식을 버리고, 나아가 모든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는 것을 자주 본다.
  "구속에서 벗어난다.", "해방 된다.", "자기 주장을 한다.",  그리고 "자신을 위한 일을 
한다."등과 같은 반응들은 더욱 근본적인 의존성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외적 요인보다 
내적 요인에서 나오기 때문에 빠져 나오거나 헤어날 수 없다. 이같은 의존성은 다른 사
람들의 문제점과 약점들로 인해 자기  자신의 정서와 감성이 손상당하게 되고,  자기의 
통제 밖이라 어떻게 할 수 없는 사건이나 사람들로부터도 희생당한다는 느낌을 갖는데
서 나타난다.
  우리는 물론 상황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의존적 단계에서는 여건과 별 관
계가 없는 개인적 성숙이 문제이다. 보다 더 좋은 여건 속에서도 미성숙과 의존적 단계
가 지속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독립적인 성품은 우리에게 수동적이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한다. 독립적이 됨은 우리 자신을 주위의 상황이나 다른 사람에 의존하
는 것으로1부터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에 가치있는 목표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것이 성공적인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혼자 사고하는 독립성은 상호의존적인 오늘날의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상호의존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독립적 단계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는 훌륭한 성과를 내는 생산자일지 모르지만, 훌륭한 리더나 팀 플레이어는 되지 못한
다. 왜냐하면 이들은 결혼 생활, 가족, 조직과 같은 공동체적 현실 속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상호의존적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이란 본질적으로 매우 상호의존적이다. 독립적인  생활을 통해 최대의 효과성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골프채를 가지고 테니스를 치려고 하는 것과 같다. 즉, 
수단이 현실에 맞지 않는 셈이다.
  상호의존성이란 더욱 성숙되고 진보된 개념이다. 만약 내가 육체적으로 상호의존적이
라면, 혼자서도 자신있게 일할 능력이 있지만 함께 힘을 합하는 방법을 택한다. 나아가 
나는 상대방과 함께 일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
을 안다.
  내가 감정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내 자신의 중요함과  가치를 인정하지만, 여기에 
추가하여 사랑의 필요성,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또 사랑을 받아야 할 필요성도 깨
닫게 된다. 내가 지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다른 사람의 가장 좋은 생각을 내 자신의 
생각에다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상호의존적인 사람이라면, 내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공유하는  기회를 
가진다. 나아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무한한 자원과 잠재적 능력에 접근할 수도 있
다.
  상호의존적 단계는 독립적 단계에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다. 의존적 단
계의 사람들은 상호의존적으로 되는 선택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상호의존적으
로 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충분히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다음의 장에서 자기완성을 위해 습관 1, 2, 3을 다루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즉, 습관 1, 2, 3은 우리를 의존적 단계에서 독립적 단계로 발전시켜 준다. 이같은 습관
들은 성품 성숙의 본질이 되는 '개인적 승리'이다. 개인적 승리인 자신에 대한 리더십은 
'대인관계의 승리'를 선행한다. 우리가 씨를 뿌리기 전에 추수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로 이 과정을 거꾸로 할 수는  없다. 이것은 "내면에서 시작하여 외부로  향하는" 것이
다.
  우리가 진실로 독립적이 된다면, 효과적인 상호의존성의 기초를 마련한 셈이다. 이제
부터 우리는 팀워크, 협동, 커뮤니케이션 등과 같은 습관 4, 5, 6이  다루는 '대인관계의 
승리'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성품적 기초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습관 4, 5, 6을 형성하기 이전에 반드시 습관 1, 2, 3에 완벽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순서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성정을 좀더 효과적으
로 관리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우리가 습관 1, 2, 3을 완전하게 개발할 때가지 대
인관계를 갖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상호의존적 세계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사는 세상과 매일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그러나 세상의 각종 긴박한 문제들 때문에 고쳐야 될 성품들이 쉽게 가리워질 수 
있다. 다라서 우리의 성품이 대인관계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성장법칙을 따르면서 좋은 성품을 위한 습관들을 단계적으로 습득하는 데 도움
을 줄 것이다.
  습관 7은 재충전의 습관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우리 인생의 4가지 기본적 차원에 
대한 규칙적이고 균형잡힌 쇄신을 하는 것이다. 습관 7은 다른 모든 습관들을 둘러싸고 
또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지속적인 자기 개선을 위한 습관으로 나선형의 상향적 성장
을 가능케 하는데,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의 이행력으로 각종 습관들에 대한 더 높은 차
원의 실행을 함으로써 점점 더 고차원의 단계로 올라가게 한다.
  15페이지에 제시된 그림은 '7가지 습관'의 순서와 상호의존성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반복해서 사용될 것이며, 여러 습관들  간의 순차적 관계와 이들 습관들이  상호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더 큰 가치를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살펴보는 데 이용될 
것이다.
  <효과성에 대한 정의>
  7가지 습관은 효과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습관이다.(여기에서 효과적이란  성공적인 
혹은 생산적인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각 습관들은 원칙에 근거를  두고 있어 최대
한의 장기적이고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들 습관은 개인이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
하고, 기회를 극대화하고, 지속적으로 학습하며,  나아가 나선형으로 상향 성장하게  할 
수 있는 올바른 지도를 형성함으로써 개인 성품의 바탕이 된다.
  7가지 습관은 자연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효과성의 패러다임에 기초를 두고 있어, 효
과성의 습관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생산과  생산능력의 균형'이라 명명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균형을 쉽게 깨뜨린다. 우리는 이 원칙을 거위와 황금알에 관한 이솝 
우화를 기억함으로써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우화는 옛날 어떤 가난한 농부가 어느 날 자기가 기르는 거위 우리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알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한다. 처음에 농부는 이것을 일종의 속임수라고 생
각했다. 그런데 그가 거위알을 치워버릴려고  할 때, 그 알을  일단 조사해 봐야겠다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거위알은 놀랍게도 진짜 순금이었다! 농부는 자신의 행운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음 날 거위가 황금알을 낳자 농부는 자신의 행운을 더욱 더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농
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우리로 달려가서 또 다른 황금알을 찾아냈다. 그 결과 농
부는 놀라울 만큼 굉장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재산이 늘어감에 따라 더욱 탐욕스러워지고 성급해졌다. 농부는 매일 하
나씩 낳는 황금알을 기다릴 수 없어서 거위를 죽여 한꺼번에 모든 황금알을 얻고자 작
정하였다. 그러나 그가 거위를 죽이고 배를 갈랐을 때,  뱃속에 황금알은 한 개도 없었
다. 이제 농부는 더 이상 황금알을  얻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농부는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여버린 셈이다.
  나는 이 우화가 효과성의 기본 정의인 원칙, 즉 자연 법칙을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한
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효과성을 황금알의 패러다임에 입각해 이해하고 있다. 즉,  보다 
더 많은 것을 생산하면 할수록, 또 더 많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다.
  그러나 이 우화에서 보여주듯 진정한 효과성이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의 함수
관계에서 나온다. 첫째는 생산되어지는 것, 즉 황금알이고, 둘째는 생산을 하게  만드는 
자산, 즉 생산하는 능력인 거위이다.
  만일 우리가 거위를 무시하고 황금알에 초점을 맞춰 생활해 간다면,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생산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반면에 황금알을 얻으려는 목표 없이 단지 거
위만을 돌본다면, 우리는 우리가 생활하고, 또 거위를 키우는 데 필요한 자금을 가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효과성은 그 책에서 생산  생산능력이라 부르는 두 가지 요소 사이의 균형에서 나온
다. 이 때 생산이란 바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즉 황금알을 의미하고,  생산능력은 
황금알을 만드는 자산, 즉 거위를 말한다.
  <3가지 종류의 자산>
  기본적으로 보면 세 가지 종류의  자산이 있다. 물질적, 재정적  그리고 인적 자산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이들 각각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자.
  (1) 몇 년 전 나는 물질적 자산인 잔디 깎는 기계를 한 대 구입했다. 나는 이 기계를 
유지, 보수하지 않고 계속하여 사용했다. 그 기계를 2년간 별일 없었으나, 그 후부터 고
장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그 기계를 고쳐서 사용하려 했을 때는 원래 가진 엔진능력이 
절반 이상이나 없어진 사실을 안 뒤였다. 이 기계는 이제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만일 내가 이 기계를 정비,  보수하는 생산에다 투자를 했었더라면,  나는 이 기계의 
생산결과인 잘 깎인 잔디를 여전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실상 내가 정비하고 보수를 
하였더라면 다른 기계로 대처하는 데 드는 시간과 돈을 훨씬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것
이다. 결국 나의 방법은 효과적이지 못했다. 
  우리는 단기간에 성과나 결과를 추구하면서  자동차, 컴퓨터, 세탁기, 그리고  심지어 
우리의 신체나 환경 등과 같은 값비싼 물질적 자산을 종종 파괴시키곤 한다. 생산과 생
산능력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물질적 자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지름
길이다.
  (2) 생산과 생산능력의 균형은 재정적 자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도 막대한 영
향을 미친다. 일례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금과  이자를 혼돈하고 있는가? 당신은 
자신의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좀더 많은 황금알을 얻기 위해 원금을 까먹은 적이 없
는가? 줄어드는 원금은 이자수입, 즉 생산하는 능력을 줄일  것이다. 나아가 자본이 점
차 줄어들어 없어지면 우리의 기본적인 욕구마저 채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재정적 자산이란 우리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능력
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산 능력을 개선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투자를 하지 않는다
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  범위를 크게 줄이는 셈이 될  것이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자기 회사나 상사를 두려워하고 그 앞에서 떳떳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
게 되면 결코 효과적이지 못하다.
  (3) 인적 자산 영역에서도 생산과 생산능력 간의 균형은 똑같이 필수적이다. 아마 이 
영역에서 이것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야말로 물질적 자산과 재정적 자
산을 통제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결혼한 두 사람이 서로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그 과실, 즉 황금알에 더 
큰 관심이 있어서 부부간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친절과 예의를 
무시하게 된다면, 서로에게 무감각해지고  경솔해지게 될 것이다. 이때  부부는 서로를 
통제하고, 자신의 욕구만을 주장할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잘못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랑과 풍요, 부드러움과 자발성
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 결과 거위는 나날이 병들어 간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아이들은 어렸을  때 매우 의존적이며 상처받기 
쉽다. 우리는 자식들을 훈련시키고, 이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은 생산능력을 돌보는 일을 등한시하기 쉽다. 우리는 자기 방식대로 지금 당장 원하
는 것을 얻기 위해 아이들을 조종하고 이용하기 쉽다. 또 우리는 아이들보다 더 성장했
고 더 많이 알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항상 옳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잔소리 
말고 명령을 따르라고 한다. 또 필요한 경우 아이들에게 고함도 치고, 위협하고, 나아가 
우리의 주장을 고집한다.
  정반대로 우리는 자녀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다.  즉, 항상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고 원하는 대로 하도록 허용해 줌으로써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면 그 결과 아
이는 내적 기준이나 목표 없이 성장하게 되고, 절제 없고 책임감 없는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권위적이거나 또는 허용적인 그 어느  경우도 두 가지 다 황금알, 즉  생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이 우리 명령을 따르게 하거나 혹은 우리가 인기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는 동안 거위인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아이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고 중요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능력인  책임감, 
자기 수양, 자신감과 같은 것의 수준은 몇 년 후에 어느 정도나 될 것인가? 그리고  아
이들과 우리의 인간관계는? 아이들이 아이덴티티의 위기를 맞는 10대 청소년이 되었을 
때, 우리가 아무런 편견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해 주고 존중하며, 어떤 경우라도 우리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과거 경험으
로부터 알 수 있을 것인가? 우리와  아이들과의 관계는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또 
서로 통할 만큼 충분히 강한 관계인가?
  이제 딸이 깨끗이 정리정돈된 방을 가꾸길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때 정리정돈된 
방은 생산, 즉 결과인 황금알에 해당된다. 이를 위해  딸아이가 자기 방을 깨끗이 치우
는 것을 원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은 생산 능력에 해당된다. 당신의 딸이야말로 바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해당되는 생산능력이요, 자산이다.
  만약 당신이 '생산과 생산능력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면, 딸을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이 기쁜 마음으로 자기 방을 깨끗이 청소한다. 그 이유는 자기방 청소를 자기의무로 
알고 있고, 또 의무를 완수하도록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아이야말로 황금알
을 낳는 자산이다.
  그러나 당신의 패러다임이 생산물, 즉 방을 깨끗이  하는데만 초점을 맞춘다면, 당신
은 딸이 자기방을 깨끗이 하도록 잔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원하는 황금알을 얻
기 위해 청소하지 않는 딸에게 고함치며, 위협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거위
의 건강과 행복을 점차 약화시키게 된다.
  이제 우리 딸아이 중 하나와 경험했던 생산능력에 대한 얘기를 해 보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 각자와 정기적으로 데이트 하는 것을 즐기는데, 한번은 딸아이와 함께 하고 있
었다. 데이트 자체도 좋지만 날짜와 차례를 정해 놓고 기다리는 재미도 보통이 아니었
다.
  그날도 딸아이와 약속한 데이트날이 되어 나는 "얘야, 오늘 밤은 네 차례다. 네가 하
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아빠, 괜찮아요."라고 딸아이가 대답했다. 나는 "정말로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
냐?"라고 다시 물었다.
  "글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빠가 싫어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진지하게 "아니, 괜찮다 얘야,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것이 무엇이
든 네가 결정해라."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스타워즈 영화를 보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저는 아빠가 스타워즈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전에도 
아빠는 영화관에서 계속 졸았어요. 아빠는 환상적인 영화를  좋아하지 않죠. 그러나 괜
찮아요, 아빠."
  "아니다. 얘야. 만일 네가 그것을 원한다면, 나도 그것을 보고 싶구나."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또 우리가 오늘 꼭 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데 아빠가 스타워즈를  싫어하는 이유
가 뭔지 알고 계세요? 그것은 그 영화에 나오는 제디나이트의 철학과 훈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무엇이라고?"
  "아빠는 아빠가 가르치는 것은 알고 있죠, 그렇죠? 그런데 그것은 제디나이트의 훈련
과 똑같아요."
  "정말이냐? 그럼 스타워즈를 보러 가자꾸나."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우리 딸은 내 옆에 앉아서 나에게 패러다임을 가르
쳐 주었다. 나는 딸아이의 학생이 된 것이다. 그것은 정말로 멋진 일이었다. 나는 새로
운 패러다임을 가지고 제디나이트 훈련의 기본 철학을 과거와  다른 상황에서 보게 되
었다.
  이 경험은 계획적으로 생산성과를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내가 생산능력에 
투자함으로써 우연히 얻게 된 성과였다. 우리는 이를 통해 결속을 다졌고, 매우 만족스
러웠다. 우리는 거위(부녀 관계의 질)를  잘키움으로써 황금알인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직의 생산능력>
  올바른 원칙이 가지는 매우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이것이 다양한 환경에 적용 가능
하고, 또 타당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이같은 원칙들이 개인뿐만 아니
라 가족을 비롯한 각종 조직에 적용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조직에서 사람들이 물질적 자산을 사용하면서 생산과 생산능력의 균형원칙을 준수하
지 않는다면, 조직의 효과성은 떨어질 것이며, 결국 죽어가는 거위만 남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기계와 같은 물질적 자산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 상관에게 좋은 인
상을 주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하자.  회사는 급속히 성장하고 있고, 승진도  빠르다. 
그래서 그는 최적 수준의 생산을 유지한다. 가끔씩 기계작동을 중단하거나, 정비 및 보
수도 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기계를 24시간 풀 가동시킨  것이다. 생산은 놀랄 만
하게 늘고, 비용은 절감되었으며, 수익은 급상승하였다. 그는 단시간 내에 승진하게  되
었다. 황금알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 일을 맡은 그의 후임자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은 아주 병든 
거위를 물려받은 것이다. 즉, 이때가 되자 기계는 녹슬고 고장나기 시작했다. 당신은 고
장난 기계를 수리하고 보수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만 한다. 비용은 급
상승하고 수익은 격감할 것이다. 누가 황금알을  얻지 못한 데 대해 비난을 받아야  될 
것인가? 당신이 비난을 받을 것이다. 비록 당신의 전임자가 그 기계를 망가뜨렸을지라
도 현행 회계제도는 단위생산량, 비용, 그리고 이익만 보고할 뿐이다.
  생산 생산능력의 균형원칙이 고객 및 직원 등 조직내 인적 자산에 적용될 때는 특히 
중요하다.
  나는 조개탕 요리를 아주 잘해서  매일 점심때마다 손님이 붐비는  레스토랑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레스토랑이 팔렸다. 새로운 주인은  황금알에만 관심을 두어 
조개탕에 원료를 적게 쓰기 시작했다. 약 한 달간 수입은 변함이 없는 반면 비용은 절
약되어 이익이 급격히 상승했다.
  그러나 고객이 점차 한사람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용은 떨어지고 사업은 거의 망했
다. 새로운 주인은 이를 회복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고객을 무시했었고 신뢰
를 저버린 결과 단골 고객을 잃어 버렸다. 이제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더 이상 없게 된 
것이다.
  고객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깊이 인식하고 있지만, 고객을 상대하는 직원들을  무시하
는 조직이 있다. 생산능력의 원칙에 따르면 직원이 고객을 최고로 대우해 주길 원하는 
만큼, 조직은 인원을 대우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노동력인 손은 살 수 있지만, 그의 마음까지 살 수는 없다. 그런데 바
로 이 마음에서 열성과 충성이 나온다. 또 우리는 짐을 짊어질 사람의 등은 살 수 있지
만, 그의 두뇌는 살 수 없다. 그런데 그의 두뇌야말로  창의력, 재능, 그리고 풍부한 자
원이 있는 곳이다.
  생산능력을 위해서는 우리가 고객을 자원자로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직원들도 자
원자로 대해 주어야 된다. 그러면 직원들도 자기 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감정과 마음
을 자진해서 제공할 것이다.
  나는 언젠가 "우리는 게으르고 무능한 직원들을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가?"에 대
하여 토의하는 그룹과 함께 자리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수류탄을 던져 뛰쳐나오게 하
면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몇몇 다른 사람들도 그와 같은 극단적인 인사관리, 즉 "개
선이 안 되면 쫓아내 버리는" 식의 방법에 대해 성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이 "그러면 누가 그 후유증에 대해 책임을 지지요?"라고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만일 고객들에게 그런 식으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묻자 또  다른 사람이 "'당
신이 물건을 살 의사가 없다면 여기서 쫓아내겠소.'라고  말하면 될 것 아닙니까?"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질문자는 "고객들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라고 말하면서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직원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우리 직원이기 때문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신 회사 직원들이 당신에게 헌신을 합니까? 그들은 열심히 일
합니까? 그들의 이직률이 어떻습니까?"
  "지금 농담하시는 건가요? 요즘 세상에 좋은 사람을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지요.  요
즘에는 너무 많은 결근, 이직, 그리고 이중 직업이 판치고 있지요. 사람들은 회사에  대
해 더 이상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황금알에만 관심을 두는 패러다임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속에 들어 있는 강력
한 에너지를 끌어낼 수 없다. 당장의 이익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이 장기적 이익에 
비해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효과성은 균형에 달려 있다. 생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건강을 해치고, 기계를 망가
뜨리고, 자금을 고갈시키고, 나아가 상호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생산능력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하루에 3 ~ 4시간씩 조깅을  하는 사람이 운동으로 소비
된 시간은 의식하지 못한 채 이를 통해 10년은 더 살 것이라고 자랑하는 것과 같다. 또
한 직장은 갖지 않고 끊임없이 학교만  다니는 사람도 결코 황금알을 생산할 수  없다. 
이것은 사실 영원한 학생 증후군이라 할 수 있다.
  생산 생산능력의 균형유지, 즉 황금알(생산)과 거위의 건강과 행복(생산능력)간에 균
형을 유지하는 데는 종종 상당히  어려운 판단이 요구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야말로 
중요한 효과성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기적인 것과 장기적인 것 사이에 균형
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또 좋은 점수 따는 것과 참다운 배움을 위해 노력하는 것 사
이의 균형을 의미한다. 나아가 방을 깨끗이 하려는 욕망과 자녀가 스스로 방 청소를 기
쁜 마음에서, 또 기꺼이 아무런 감독없이 하게 하는 것 간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많은 황금알을 얻기 위해 지나치게 과로하면 아프거나  지쳐서 더 이상 황금알을 
얻을 수 없게 되고, 반면 충분히 쉬고 잠을 자고 나면 온종일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음
을 경험한 사람이면 누구든지 생산 생산능력의 균형유지에 관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
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 주장을 고집할 때 서로의 관계가 소원해짐
을 느낄 때나, 좋은 대인관계를 맺게 되면 진정한 협조와 대화가 가능해지고 대단한 결
과가 나타남을 보았을 때도 이 진리를 체험했을 것이다.
  생산 생산능력 간의 균형은 바로 효과성의 본질이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인생의 모
든 영역에서 입증된다. 우리는 이 균형에  따른 삶을 살 수도 있고,  따르지 않으며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균형의 진리는 영원하다. 이것은 마치 등대와 같다. 따라서 이 균
형의 진리야말로 이 책이 다루는 '7가지 습관'들이 기초로 하고 있는 효과성에 대한 정
의이며, 패러다임이다. 
  <이 책의 사용 방법>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기 전에,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얻게 될  가치를 
크게 증대시켜 줄 수 있는 두 가지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이 책을 그저 한번 읽어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는 그런 종류의 책으로는 '보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당신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하여 한번에  완전히 독파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변화와 성장의 지속적인 과정에 동반자가 되도록 설계되
어 있다. 이 책은 순차적으로 편집되어 있고, 각  장의 끝에는 응용 아이디어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하고 싶을 때면 언제든 특정한 습관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
록 만들었다.
  당신이 이해와 실행에 있어서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각 장의 원칙을  다시 
학습함으로써, 이 책의 내용에 관한 지식, 기술, 그리고 욕구를 키워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의 패러다임을 학습자의 입장에서부터 교사의  입장으로 
전환시킬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내면에서 시작하여  외면으로 향하는", 즉 자기가 이
해한 다음 남을 이해시키는 접근방법을 채택하여, 학습한 후 48시간 내에 그 내용을 누
군가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토의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라.
  예컨대 당신이 만약 48시간 내에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생산 생산능력의 균형유지에 
대한 내용을 가르쳐 주기로 했었다면, 앞장에 있는 내용을 읽을 때 더 주의해서 읽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것을 실행해 보라. 당신이 이 책의 내용에 대해 기억이 생생할 
때, 즉 오늘이나 내일 중에 배우자나 자녀들, 직장 동료들, 혹은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
어야 한다고 가정하고 이 책을 읽으라.  그러면 당신 자신의 정신적 및 감정적  반응이 
달라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만일 당신이 이러한 방법으로 각 장의 내용을 읽어 나간다면, 자신이 읽은 내
용을 보다 분명하게 기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각도 넓어지고, 이해도 보다 확실
해지기 때문에 이 내용을 적용하고자 하는 동기도 강해질 것이다.
  여기에 추가하여 만일 당신이 이 책에서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솔직
하게 얘기해 본다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이나 낙인
이 사라지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과 함께 배우
는 사람들은 당신을 변화 및 성장하는 사람으로 바라볼 것이고, '7가지 습관'을  당신의 
삶이나 그들과의 삶 속에 통합시키는 데 보다 협조적이고 우호적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기대효과>
  마지막으로 메릴린 퍼거슨(미국 출생 작가, 출판인,  편집인)의 말을 들어보자. "아무
도 다른 사람을 변화하도록 설득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단지 내면에서만 열  수 
있는 변화의 문을 지키고 있다. 논쟁이나 감정적 호소에 의해서는 다른 사람이 가진 변
화의 문을 열 수 없다."
  만일 당신이 '7가지 습관'에 포함된 원칙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이에 따라 생활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변화의 문"을 열기로 작정한다면, 나는 몇 가지 긍정적인 일이 당신
에게 일어날 것을 확신한다.
  첫째, 당신의 내적 성장은 점진적으로 진전되지만, 실제 효과는 혁명적이 될  것이다. 
생산 생산능력의 균형유지만이라도 완전히 실행된다면, 대부분의 개인이나 조직이 변혁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처음 3가지 습관(개인적 승리)에 대한 "변화의 문"을 여는 것이 가져오는  실제 효과
는 당신에게 대단한 자신감을 증대시켜 줄  것이다. 당신은 이를 통해 보다 깊고  의미 
심장하게 자신의 본성, 자신의 중요한  가치, 그리고 자신의 독특한  공헌 능력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면 아이덴티티, 성실성, 자제력, 그리고 독자성 
등은 당신에게 기쁨과 마음의 평화를 불어 넣어 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남들의 의견
이나 남들이 하는 비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 기준에 의해서 모든 것을 판단
할 것이다. 이때는 남들이 결정한 '옳고 그런 것'은 별로 상관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당신이 남들의 당신 자신에 관한 의견을 덜 염려하게 되면,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신은 
그들과의 관계를 포함해서 그들 자신과 세상에 관한 의견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게 된
다. 또 당신은 남들의 약점이나 잘못에 더 이상 감정적이  아니고 영향받지 않는다. 여
기에 추가하여 당신은 내면에 본질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다 쉽고, 
바람직스럽게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다음 단계에서 추가되는 세 가지  습관(대인관계의 승리)에 대해 앞에서 말한 변
화의 문을 열면, 악화되고 있거나 또는 이미 파괴된 중요한 인간관계를 치유하고, 재건
할 수 있는 욕망과 수단을 발견하여 쏟아 넣을 것이다. 또한 이왕의 좋은 인간 관계도 
보다 훌륭한 관계로 개선될 것이며 더 깊고, 더 견고하고, 더 창의적이며, 나아가  더욱 
진취적으로 변화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상의 습관들을 완전히 내면화시켰다면, 일곱째 습관은 앞의 6가지 습
관을 새롭게 해 줄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당신을 진정으로 독립적으로 또 효과적인 상
호의존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당신은 자신의 배터리를 재충
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현재 상황이 어떻든지 나는 당신의 현재 습관이  당신답지 않은 것임을 확신
한다. 당신은 자신을 파괴하는 낡은 행동을 새로운 방식, 즉 효과적이고 행복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습관으로 바꿀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이들 습관을 공부할 때  성장과 변화의 문을 열도록 격려해 주고  싶다. 
우선 자신에 대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자기 성장은 부서지기 쉽고 신성한 영역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이것처럼 투자 가치 있는 것은 없다.
  이것은 어렵고 특효약도 없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이것을 위해 노력하면 큰 혜택을 
보게 되고, 고무적인 즉각적 이익도 얻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제 토마스 페인(영국 
태생으로 1774년 미국으로 이민, 미국 개국 초기의 정치사상가, 독립운동가)의 말을 빌
려 보자. "우리는 쉽게 얻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만물에 그 가치를 부
여해 주는 것은 귀중함뿐이다. 하느님만이 만물에다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을 아
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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