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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hiavelli's peace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

by FraisGout 2020. 8. 20.

  죽음이란 결국은 사람들 각자에게 합당한 이름과 안식을 선사하는 법이지만, 그것이 마키아벨리에게 처음으로 가져다준 것은 무자비한 공격과 오명 분이었다.  불운은 그의 생애를 통해 그렇게도 그를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마치 화형주처럼 그 피곤한 영혼의 유해를 활활 태우고 있었다.  시대의 배경은 바르게 바뀌었고, 반면 인간의 본성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렌체의 서기장은 (비록 위대했지만 동시에 불운했기 때문에 죄악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한 교황의 은총과 특권으로 인쇄되었던 그 불멸의 저작들은 이제 다른 교황에 의해 탄핵을 받고 금서화되었다.
  반마키아벨리즘의 아버지이자 자식인 그 악명 높은 (마키아벨리즘)은 프랑스 땅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세례까지 받았다.  이는 언젠가 프랑스인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말했던 그 사람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한때 어떤 찬사도 충분치 않다고까지 얘기되었던 그 이름이 이제 와서는 모욕과 경멸이 대상이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명사, 형용사, 동사, 부사들이 만들어졌다.  나아가 그 이름을 둘러싸고 악마 연회의 분위기를 풍기는 하나의 전설이 형성되었다.
  한 사람이 어떤 과학적 발견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스스로의 야심을 채우는 데 이용하거나 또는 그것을 빙자하여 전혀 칭송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발견자에게 모든 짐을 지우는 것이 마치 정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한 사악한 과학의 법칙들을 탐색하고 그것을 만천하에 알린 책임은 마키아벨리에게로 쏠렸다.  또 그의 저작들을 공부하고 그것을 칭송한 사람들의 행동까지도 모두가 그의 탓으로 돌려졌는데, (가장 최근의 폭정들을 제외하고라도) 나폴레옹 1세가 그 한 보기이다.  그 역시 (한 명의 신군주)였던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한 부당한 오명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이었다.  마키아벨 리가 마침내 자신의 시대를 맞아, 이전에는 위대하지만 차갑고 비인간적인 저술가로 취급당했던 바로 그곳에서, 민족의 부흥과 함께 열정적이며 고결한 인물로서 되살아난 그때에조차도, 그 동안의 편견들은 단지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통치자의 폭정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편견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파스콸레 빌라리처럼 훌륭한 제일급의 전기 작가가지도 그 오랜 죄악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언제나 그에게서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피스텔 리가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그는 (비록 자신의 주인공을 칭송하고 있으며 또한 언제나 최선을 다해 그를 변호하려 하고는 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것이다.  반면에 나는 그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그를 변호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한 인간으로서 그가 겪은 역경들 속에서 그에게 가가이 다가가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오늘날에는, 그를 가리켜 (사악한 천성)을 가졌다고 한 카포니의 말을 감히 되풀이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코 그 (절망적인 경구들의 잔인함)은 틀림없이 산 세바스티아노 가의 대저택에서는 너무나 시큼한 맛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 역시 그곳에서 초년을 보냈고 같은 공기를 호흡하였다.  부디 솔직 담백한 지노 아저씨께서 이 어긋나는 조카의 말들을 용서하시기를!  그 시대에 또 그런 집에 살면서 달리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조차도 철학자들은 마키아벨리의 철학에 관해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좀더 잘 알고 있다.  즉 일부 철학자들이 마침내 인정했듯이, 그란 인물은 분명히 철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시종일관 정치가이자 예술가였고 아울러 시인이었다.  그는 과학적 판단력과 함께, 예술가와 시인의 즉각적이고도 다기다양한 충동의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어느 때부턴가 마키아벨리의 수수께끼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던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사상이 지닌 근본적 논리와 일관성을 의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충동적 열정과 함께 모순되면서 복잡다단한 그의 기질 또한 반드시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이미 이 책 앞부분에서 그의 성격을 나 자신이 말로써 묘사해 보려고 했던 바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바로 서기장 자신이 또 하나의 위대한 피렌체인에 대해 섰던 그 말을 빌려 그의 성격을 표현해 보는 쪽이 더 낫겠다.  (그의 내부에는 두 개의 다른 인격이 거의 불가능할 것 같은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절망적인 경구들)에 대해, 우리는 지금까지 그것에서 모든 외적 맥락들을 애써 잘라낸 채, 단지 순순하고 견고한 과학적 명제로 생각하도록 배워왔다.  그것은 국가의 내적 필연성에 의해 부과된, 도저히 물리칠 수가 없는 어떤 가혹한 필요성의 표현인 셈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마키아벨 리가 종종 (stato)란 말을 (patria)의 뜻으로 쓰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stato)란 국가, 정권, (patria)란 조국, 교향이라는 뜻-옮긴이).  더욱이 (리비우스 논고)와 (군주론)에는 (조국이야말로 마키아벨리적 도덕성의 한계이자 기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다수 있을 것같이 보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는 마키아벨리가 그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도덕성에 대한 관념을 지니고 있었음을 인정해야 하며, 그의 저작들 속에서 (엄격함과 함께 고통스런 도덕적 양심의 명확한 징후들)을 인식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의 윤리학을 가리켜 (높고 원대하다 d'alta montagno)라고 규정한 경우가 있었다.  이 말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미적인 종류가 아니라 어떤 의미 표출적인 종류일 것인데, 우리는 이를 그의 종교에 적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가 국가에 관한 이론화 과정에서 종교를 거의 하나의 (통치 수단)으로까지 만들면서 그것을 국가에 적응케 하려 했다는 생각이 논리적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은 말처럼 말이다.  (모든 형태의 인간 활동은 그것이 행해지는 과정에서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스스로를 강화할 힘을 얻는 법이다.)  하지만, 그 엄격하면서도 격노의 화염에 휩싸이기 쉬운 반종교개혁의 시대에, 마키아벨리의 사상이라는 전체 구조물로부터 어떤 문구들을 따로 떼어내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런저런 예배의 방식들에 대한 피렌체 서기장의 냉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기 자신까지도 스스로 비방하는) 인물에 의해 과장적으로 표출된 수많은 조롱 조의 농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 교회의 부패 때문에 신앙심과 이탈리아가 파멸에 이르렀으며 (하늘이 무장해제당했다)고 비난한 그의 유명한 조소 띤 구절들을 그러한 경구들과 연관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산더미 같은 편견들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그것은 마키아벨리적 윤리의 대담성에 의해 야기된, 그렇지 않아도 이미 커다란 오해와 스캔들의 더미를 더 키워놓았다.  이렇게 해서 몇백 년의 세월이 흘러가자, 편견의 더미들은 층층이 싸이고 다져져서 피렌체 서기장의 종교적, 그리스도교적 양심은 그 밑에서 형체도 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편견은 그 무게와 힘이 대단한 데다 더욱이 시간이 흐름 속에서 굳어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이는 그 저자의 그리스도교 사상이 절정에 이른 것이라 보고 나의 경우는 인간적으로 고통당한 한 인생의 봉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참회 권유)이 그 경건하고도 서글픈 내용에 대해서조차, 평소에는  그의 도덕성과 신앙심을 옹호해 마지않던 가장 명석한 현대의 학자들까지도 그것을 번잡스런 농담 조의 이야기 정도로 치부해 오지 않았던가!
  마키아벨 리가 만년에 이르러 (그 위대한 인물)에 대해 썼던 존숭의 말들도, 그의 사신과 시구들에 담긴 불경함과 경멸조의 반사제주의적 태도를 잊게 만드는 데는 결코 충분치 못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신앙 원래의 순수성을 보존해 온 민족들에 대한 그의 특별한 애정도, (그리스도의 삶을 귀감으로) 그 뒤를 따른 사람들과 (성프란체스코의 발자취를 좇았던) 사제들과 (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찬) 병사들에 대한 그의 칭송도, 그 굳어진 편견들을 제거하는 데는 오랫동안 충분치 못했다.  어느 것도 충분한 것이 없었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주목한 극히 미묘한 측면들 역시 편견을 바로잡기에는 아마도 충분치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란 미묘한 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보다 가면을 보여 그것에 더 익숙해져 있다.  그들은 결코 그 밑에 있는 진면목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어느 것으로도 충분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그리스도교적 본질)과, 그의 저작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는, 내적 종교성에 기반한 양심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 다음과 같은 말들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신앙심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종류의 선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그것이 없는 곳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이와 비슷한 경구들은 그의 글 속에서 많이 보이는데, 실제로 지난 세기에 신자들ㅢ 교화를 목적으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저작에서 충실히 추출한 종교적 경구 선집 Massime religiose estratte frdelmente dalle opere di Niccolo Machiavelli)이란 책을 편찬한 사람이 있었다.  이 괴상한 선집은 현대의 몇몇 변명론자들의 글들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기세 좋게 안장 위로 뛰어오르다가 오히려 말 저편으로 나가덜어져 버리는 기수를 연상케 한다.  변명론자들이란 가장 무자비하게 그를 공격하는 사람들 못지 않게 해로운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이 (아직까지 누구도 지나가지 않았던) 길을 택함으로써 방향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마키아벨리의 예언과 선량한 필리포 다 카사베키아가 (유대인들 또는 다른 민족의 후예들에게서나 봄직한 가장 위대한 예언자의 모습)을 서기장에게서 발견했노라며 농 반 진 반으로 썼던 말들을 되새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는 예언자였으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였고, 자기 스스로가 한때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며 밀어넣었던 그 운명의 구렁텅이에 그 또한 빠져들었다.  물론 화형주에 매달린 것은 그의 초상과 책들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화형주로부터 (사후에) 다시 솟아나, 무장하지 않은 예언자를 무장시켜 그를 무적의 존재로 만들 그러한 무기를 손에 쥐고는 복수를 위해 되돌아올 운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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